하루를 성실히 보내고 나면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침대에 누워 하루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웹툰 앱을 연다. 요즘 즐겨보는 가볍고 재미난 웹툰이 있는데, 평소 생각이 많은 나에게 딱이다. 생각 안 해도 되니까! 재미나게 한 두어 편 봤을까. 시야가 점점 흐려진다. 오후 10시 반이었던가.
투석을 14년간 하면서 기본값이 불면이었다. 투석환자의 67퍼센트가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통계를 담은 기사도 있고, 실제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케이스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별하지 않은 나 역시 늘 그 불면에 시달리는 67퍼센트에 속했고, 불면에 대해 주치의 선생님과도 상의를 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처방받아서 먹어보기도 했다. 투석 전문의들은 신견정신과 약까지 광범위하게 처방할 수 있기에 편안하게 이런저런 약 먹는 일들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신경안정제를 먹어도 각성이 됐다. 당시에는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해서 수시로 울고 감정이 널뛰었다. 주치의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신경안정제를 먹었는데 눈물도 감정도 차단이 되고 오로지 각성만 됐다. 서른 시간 동안 잠도 안 자고 마치 로봇처럼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수면제는 선생님이 판단하시기에 약효가 강하지 않은 것으로 처방을 해주셨는데, 처음 먹었던 날에는 정남이와 티브이를 보다가 정남이에게 헛소리를 마구 뱉어내다가 갑자기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날이 수요일이었다는 것과 마지막으로 보았던 김국진 아저씨의 얼굴이 두 개에서 세 개, 네 개로 점점 늘어났다는 것. 그렇게 해서 오래 잠을 잤으면 모르겠는데, 새벽 두 시반에 또 거짓말처럼 눈이 떠졌다. 다음 날에 또 수면제를 먹었다. 먹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수면제를 한 알 또 까서 먹고, 또 까서 먹고. 그런 식으로 다섯 알까지 먹었다. 그래도 그날 밤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이후로 다시는 수면제도, 신경안정제도 먹지 않는다. 신경안정제를 먹고 각성이 되어 로봇처럼 공부를 했던 것은 좋았지만, 약을 먹고 한 공부여서 딱히 머리에 남지는 않았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수면제를 계속 까먹다가 나 스스로가 잘못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면제를 계속 까먹은 것은 온전한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냥 자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살았다. 새벽 서너 시, 혹은 다섯 시에 깜빡 잠이 들었다가 헐레벌떡 일어나서 병원에 가기도 했고 삶의 질 자체가 엉망이었다. 밤에 잠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나는 정상적인 수면을 하는 날도 간혹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밤샘을 하고 투석을 하러 다녔다. 올해 초였던가. 나의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봤다. 학생 시절에도 그렇게 일찍 잠들지 못했었다. 나의 인생에는 숙면이나 수면이 없는 채 이대로 끝나버릴까 봐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늘 혼자 깨어있는 밤들이 너무 싫었고, 그 밤을 짓누르는 생각들도 싫었다. 밤샘을 하고 출근을 하는 날에는 정말 피곤해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단지 그런 위기감이 아주 강렬하게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너무 피곤해서 밤 9시에 잠들어 통잠을 자고 새벽 네댓 시에 깨어나는 기적같은 일들이 찾아왔다. 눈을 뜬 새벽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화가 나지 않았다. 바깥 생활을 하면서는 누구나 내게 성격이 좋다고 하지만, 사실 가정 내에서는 폭군이다. 맙소사. 이렇게 커밍아웃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렇다, 나이 든 딸에게는 폭군이다. 정말 화가 많은 문간방 어머니, 정연. 사실 정남도 가끔씩 누나 말하는 꼬락서니에 오만정이 떨어지는 순간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의도하는 것은 아닌데, 정말 말을 못되게 하는가 보다. 아아, 못돼 쳐 먹은 문간방 어머니는 외로워.
지금은 플래너에 온통 10, 11이라는 취침시간과 한결같이 5시 30분이라는 기상시간이 기록되어 있다. 토요일인 오늘은 새벽 4시 10분에 일어났다. 어제 정남이가 오랜만에 쉬는 토요일이라고 좋아했다. 엄마를 출근시켜 드리고, 회사에 깜빡하고 온 전산입력만 하고 돌아오는 오는 길에 둘이 맛있는 김밥을 사 먹기로 약속을 했다. 아마 그 생각 덕분에 일찍 깨어난 것 같다. 새벽 6시부터 머리를 감고 나갈 준비를 했다. 엄마를 일찍 모셔다 드리고, 정남이네 회사로 갔다. 아주 오래전, 정남이에게 가져다줄 것이 있어서 택시를 타고 와본 적이 있다. 회사 건물이 크고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회사가 텅텅 비어 있어서 정남이를 따라서 건물 안으로 잠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정남이는 무심한 듯 나를 데리고 회사 구석구석을 모두 구경시켜 주었다. 정남이가 처음 입사해서 지냈던 팀의 사무실도 보여주고, 그때 승진해서 쓰던 책상도 보여주었다. 엄청 너른 사무실에 들어가니 왠지 요직들이 모인 듯한 곳에 정남이의 책상이 있었다. 이쪽이 센터장님 책상이고, 이게 내 책상이야. 꼭 옛날 아빠 회사에 따라간 기분이었다. 정남이는 늘 차분하고 말투도 경상도 남자 특유의 그것인데 , 행동이 다정하다. 정남이가 보여주는 커다란 회사를 보면서, 이렇게 큰 회사에서 정남이가 중책을 맡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정남이가 평소에 받을 스트레스나 책임의 무게도 크겠구나. 그러니 가족들 걱정까지 더해지면 안 되겠구나. 내가 정말 잘해야지. 내가 더욱 성장하고 발전해서 정남이 어깨에 무거운 짐을 얹지 않도록, 함께 지고 나아가도록 노력해야지. 뭉클해졌다. 지금도 운전을 하는 정남이의 옆모습을 보면 5살 아가때와 똑같이 느껴지는데 정남이가 이렇게 어른이 되었구나. 정말 힘든 일을 많이 겪었는데, 누구도 너를 키워주고 도와준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 너 혼자서 잘도 컸구나. 잘 자란 자식을 보는 부모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숙면하는 생활을 반년쯤 하니, 이제는 5시 30분 기상이 기본값이 되어 삶에 나름의 활력이 생기고 마음이 평온하다.
한동안 부정연에게 긍정연이 잠식당해 힘들었는데, 이제는 무엇이든 다 잘 되리라는 마음이 있다. 어쩌면 숙면이 긍정의 원천인지도 모른다. 집안이 편안해야 모든 것이 편안한 법. 집에서 화를 내지 않으니 이제 폭군이 아닌 성군 정연으로 거듭나, 가정의 태평성대를 이룩해 보아야겠다. 살아가는 일 다 별 것 없다. 그저 나와 나를 둘러싼 이들이 편안하게 웃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