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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고 걷는다.

by 이정연




내일은 정남이 생일이다. 정남은 금요일에 일본으로 떠났다. 주말을 일본에서 보낸다. 호화 해외여행이 목적은 아니고, 공연을 보러 갔다. 마침 일본 도쿄에서 회사생활을 하며 거주하는 친구가 있어서, 친구네 집에 신세를 지며 함께 공연도 보고 주말을 보내고 있다. 친구의 동생도 한국에서 건너간 상태라, 오랜만에 세 청년이 뭉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엄마와 나는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 언젠가 그저 위트 있게 썼던 엄마와 나의 이야기에, 엄마에 대한 욕이 길게 달린 적이 있다. 그런 내용의 글은 절대로 아니었다. 내가 엄마를 욕하는 글도 아니었고, 엄마를 욕해달라는 글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글은 읽은 독자님은 '당신 엄마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며 아주 정성스럽고도 긴 댓글로 우리 엄마를 욕하셨다. 덕분에 나는 발행한 글을 지워야 하나, 내가 글을 써서 부모를 욕먹이는 후레자식인가 한참을 고민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모든 관계가 역전되는 순간이 온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내가 이 가정의 엄마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커다란 책임감을 이고 지고 살았다. 그 책임감 때문에 정말 어깨가 많이 무겁기도 했고, 때로는 자식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평범한 다른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도 조금만 더 자식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아직 관계가 역전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이었다.

남보다 일찍 망가진 신장, 남보다 일찍 망가진 각막 정도면 인생은 이미 많이 버겁다. 그러니 자식으로 편하게 살고 싶었는데, 나를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는 이 우주가 원망스러웠다.


출국을 앞둔 정남이 앞에서 또 엄마와 싸웠다. 사실 싸웠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늘 내가 일방적으로 화를 내기 때문에. 그래, 나는 못돼 쳐 먹은 정연이다. 못돼 쳐 먹어서 밥도 많이 처먹는다. 전에는 많이 먹지 않았는데, 스트레스가 수직 상승한 몇 년 사이에 식욕도 함께 상승했다. 성질머리도 같이 나빠졌다. 체중도 함께 늘었다. 나쁜 방향으로 모든 것이

정남이 때문에 극적으로 화해를 했지만, 정남이에게 너무 미안했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 내게 정남이는 오히려 공항에 가면서 고맙다고, 잘 지내고 있어 달라고 당부의 메시지를 보냈다. 싸움이 끝난 후, 정남이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나는 늘 내가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고, 내가 준 것들만 생각했다. 정남이는 엄마가 우리에게 주었던 것들, 지나온 30년을 이야기하며 상기시켜 주었다. 나는 정연 엄마로 고작 3-4년을 살았을 뿐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뿔이 났었나 보지. 이를 악물었다. 정남이를 위해서라도, 정말 주말 동안 엄마와 잘 지내보자.


인생을 살아보니 정말로 가족밖에 없었다. 아무리 좋은 친구여도 나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는 없었다. 내가 정말 잘됐을 때 나를 진정으로 축하하는 사람도 가족뿐이었고, 내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도 내 편이 되어주고 위로해 준 것은 가족뿐이었다.

내가 정말 큰 상실을 겪었을 때 정남이 해준 말을 잊지 못한다. "나는 어떤 상황에도 누나 편인 거 알제?"

그리고 내가 돈을 벌 때도, 돈을 벌지 않을 때도 나에게 용돈을 보내주는 사람은 늘 엄마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정말 안타깝지만,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 영원히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지옥이 열린다고 했다. 나는 어쩌면 엄마를 미워하면서 스스로 지옥에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엄마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복잡한 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기로 한다.


주말 동안 정남이가 집을 비우기에, 엄마와 영화를 보러 가려고 사실 며칠 전 예매를 해두었었다. 그러나 이른 장마가 시작되어 엄마와 그냥 집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엄마는 토요일인데도 출근을 했다.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는 나는, 오늘도 그 시간에 일어났다.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하고, 찌개도 끓여두었다. 토요일이라 한 시간 일찍 엄마가 퇴근했다.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일을 포기했지만, 대신에 엄마가 좋아하는 영화관 콤보를 배달시켰다. 요즘은 집에서 영화관의 팝콘과 음료, 버터구이 오징어 따위를 주문할 수 있다. 엄마와 영화관에 가면 꼭 버터구이 오징어를 사드려야 한다. 다리 말고 몸통으로. 나는 성질머리가 더럽지만, 실은 엄마 취향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엄마와 싸우는 이유는 엄마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라는 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기대의 다른 말은 사랑이라는 걸, 내 입으로는 말하고 싶지 않다. 무뚝뚝한 성격, 경상도 태생. 내 스스로가 딸처럼 살갑게 구는 것이 어려워 그냥 큰아들로 생각하라고 가족들에게 선언할 정도였다.

돌아가신 아빠를 생각한다. 아빠에게 다하지 못한 마음을, 그 후회를. 대신에 엄마에게 다 쏟아야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을 했었는데.


팝콘을 전혀 드시지 않던 엄마가 나이가 들면서 팝콘을 드신다. 좋아하는 버터구이 오징어도 실컷 드시라고 두 통을 시켰다. 거실 테이블에 팝콘과 오징어를 늘어놓고 함께 먹으며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본다. 영화를 보는 틈틈이 엄마의 등을 두드려준다. 영화를 보다가 엄마와 얼굴을 마주할 때, 애틋함을 느낀다. 엄마의 눈을 보고, 나의 진심을 말한다. 어떤 말을 했는지는, 온 우주에게 비밀이다. 오글거려서 절대로 발설할 수 없다. 영화를 보며 주전부리를 과하게 먹었으니 함께 걷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걸으러 나가기 전에,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산책로로 가자고 했더니 엄마의 들뜬 마음이 온 집안에 가득하다.

우리 단지는 주말에만 재활용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데, 늘 그 일을 엄마 혼자서 해왔다. 그간 정남과 내게는 출근이나 외출이라는 좋은 핑계들이 있었기에, 쓰레기 처리는 으레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오늘 처음으로 내가 엄마의 재활용 쓰레기를 나눠 들었다. 평소 엄마 혼자서 몇 번을 왔다 갔다 할 일이, 단 번에 끝났다. 쓰레기장에 플라스틱을 쏟고 박스를 던지고, 둘이 손을 잡고 산책로로 향했다. 나와 무언가를 함께 하면 엄마는 '정말 행복하다'는 말을 내뱉는다. 정말 별 것 아닌 일임에도.

엄마는 주말 드라마 매니아기 때문에, 딱 40분만 걸었다. 드라마 시작할 즈음이 되었다고 하니 소녀처럼 종종걸음 치는 엄마가 귀엽다.


내가 챙겨야만 하는 상황이 싫었다. 말로는 이제 내가 부모의 역할을 해야지, 내가 엄마가 되어야지 하면서도 마음은 기껍지 않았다. 그러나 홀로 누워 많은 밤을 생각했다. 나는 아직 젊다. 나를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친구들과 교류를 하고 있고, 가장 친한 친구인 정남이가 있다. 즐길거리들이 무한으로 주어진 시대에 살고 있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다.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혼자서 영화도 볼 수 있고, 공연이나 전시도 볼 수 있다. 혼자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갈 수도 있다. 앞으로 사회인으로 더 성장하고 성공한다면 훨씬 더 좋은 것들도 많이 누리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그저 엄마로만 너무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이제는 친구의 수가 많이 줄었고, 혼자서 문화생활을 즐길 수는 없다. 자식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이 꽤 많다. 유일한 취미는 혼자 동네를 걸어 다니는 것과 장 보러 다니는 것, 티브이 드라마를 보는 것뿐이다. 그런 엄마의 외로움에 대해, 그 깊은 외로움에 대해 생각한다. 오늘 함께 걷는 동안 몇 번이나 먼저 내 손을 잡으려던 엄마를 잊지 못한다.


내일은 조금 더 이른 시간에 엄마와 길을 나설 것이다. 오늘과는 다른 길로, 엄마와 손을 잡고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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