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살고 싶다.
귀촌하기로 결심이 서고 가족 어른들에게 말하기까지 약 7개월이 걸렸다. 왜 이리 늦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우리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나 보다. 그렇게 고민하다 코로나가 우리를 등 떠밀어준 것도 있다.
부모님들에게 말하기 전에는
내가 농사나 지으라고 대학까지 보낸 줄 알아?
라고 하실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 걱정과는 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시부모님은 정말로 따뜻하게 시골로 온 것을 반겨주셨다.
약간의 걱정은 돈벌이이지만, 우리라면 잘할 거라고 하셨고 선뜻 자신들의 농지까지 넘겨주셨다. 참으로 괜한 걱정을 했다. 우리 모두는 대부분 쓸데없는 걱정으로 인생을 허비하고 있구나를 다시금 느꼈다.
이젠 우리 아빠에게 말하러 갔다.
뭐하러 농사를 하니?
라고 할 줄 알았던 우리 아빠도 영농후계자가 생겼다며 더 발 벗고 나서 주셨다
자신이 임대한 하우스 5개 중 1동을 넘겨주며 작게 (?) 시작해보라고 했다.
농사법은 언제나 와서 알려주겠다고.
분명 5개월 전에 살짝 떠보며 "아빠 내가 귀농하겠다고 하면 어떨 거 같아?"라고 했을 땐,
"뭐하러 농사를 짓니? 아빠만 해도 돼~"라고 했던 우리 아빠.
너무 감사했다. 나이가 먹으면 다들 꼰대라고 하는데, 우리 아빠, 그리고 우리 시부모님은 참으로 신. 세. 대. 였다.
내가 내려온 "이곳"
'충남 예산군 삽교읍 '
이곳은 예로부터 삽교평야로 유명했다.
가을이면 삽교 평야의 벼들은 금빛 파도로 물결을 쳤다. 샛노란 쌀 벼들 사이에 허수아비들은 새들을 쫓기보단 자신의 어깨 위를 빌려주며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는 듯했다.
초등학교 시절 등하교할 때 적엔 집에 바로 가지 않고 논에 끝자락에 앉아 한 시간은 놀던 기억이 있다.
논 안에 개구리 알에서 올챙이로 그리고 개구리들로 성장하는 과정을 매일 봤다.
그만큼 논들이 많고 탁 트였다.
우린 그렇게 예산군 삽교읍에 내려왔다. 예산군은 지금 충청남도의 유일한 코로나 청정구역이다. 얼마나 감사한지.
이렇게 시골에 내려오니 별 거 아닌 것들 하나하나가 다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비가 오는 것도 감사하고, 비가 안 온 것도 감사하고, 햇볕이 쨍쨍한 것도 감사하고, 우중충한 날씨도 감사하다.
비가 오면 농작물이 잘 자라니 감사하고,
비가 안 오면 풀도 뽑고, 밭에 가서 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햇볕이 쨍쨍하면 모든 식물들이 좋아하고,
우중충한 날씨엔 전을 부쳐 먹을 수 있으니 감사하다.
우리는
큰 꿈은 없지만,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아침 새들의 울음소리에 잠이 깨고
점심 매미소리에 나무들 한번 쳐다보고
저녁노을에 남편과 손잡고 산책하며
밤 귀뚜라미 소리에 찰흙 같은 풀 속을 보며 창문을 닫는다.
우리는 맘 놓고 일을 벌여보기로 했다. 농촌을 위해서, 농업을 위해서, 농민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진정한 삶을 위해여-
그럼 저희 한번 행복해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