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산업에 대한 중요성- 귀농귀촌하기로 결심했다
코로나가 다했다
우리를 억지로 시골로 데려다준 코.로. 나
서울에 살던 우리는 더욱이 밖에 나가지 못했다. 맛집도 영화관도 마트도.
도시의 인프라를 하나도 써먹지 못하는 데 여기에서 비싼 돈 주고 위험한 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짐을 싸기 시작했고,
당근마켓에 필요 없는 물건들은 팔기 시작했다.
그래도 꽤나 돈이 모였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고 물건도 많이 없었는데, 팔려니 또 많았던 나의 물건들.
이사는 승용차 한 대로 다 가능했다.
그리고 드디어 내려온 시골.
충남 예산군 삽교읍.
나와 남편은 여기 이 마을에서 약 20년을 살았다.
아빠의 농사법을 이어받아, 우리는 농. 사를 짓기로 했다.
코로나까지 터진 이때,
여행도 못 가고
마트도 못 가고,
직장도 못 간다면,
내 먹거리는 내가 지어먹을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1차 산업인 농업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자급자족하며
산속에 숨어 마스크 없이 살아 보는 건 어떨까.
이렇게 코로나19같은 질병이 또 온다면?
중국과 미국이 무역전쟁을 계속한다면?
일본과의 분쟁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래서 우리가 먹는 농산물 90%를 수입으로 가져오지 못한다면?
10%만 자급할 수 있는 우리 국산 농산물의 몸값은 미친 듯이 뛸 것이다.
당연 가난한 사람들이 먹지 못하겠지.
거기서 농사를 직접 짓는 농부들은 부자는 아니지만 굶어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 가족들 먼저 먹여야 할 테니까.
그러한 이유들로 우리는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을 생각이다.
벌써부터 설레고, 벅차다.
당연히 농사로 큰돈을 기대하진 않지만, 걱정이 많이 줄어들었다.
먹고살 걱정,
코로나 19 걱정.
단점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코로나가 지나가면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할 테지만, 지금은 코로나가 창궐해있으니까.
한국의 시골은 인터넷이 굉장히 빠르고, 로켓쿠팡이 오며, 치킨 배달도 온다.
이 셋만 있다면 충분하다.
그리고 청년(20세~39세 이하)이 농업을 짓겠다고 귀농한다면 엄청난 혜택들이 있다.
청년 창업농이 된다면(귀농귀촌 교육 100시간 이수 시) 3년 내내 100만 원(1년간),90만 원(1년간),80만 원(1년간) 생활비가 지급되고, 대출도 3억 원까지 2%의 이자 이율로 받을 수 있다.
집값이 엄청나게 싸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직장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정착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20년 전에도 나는 이 자리에서 봉선화 꽃으로 손톱에 물을 들였다. 여름방학에 이쁘게 손톱에 물을 들이고 가야,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자랑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봉선화 너는 똑같이 꽃을 피고 있구나.
모든 건 제자리에 똑같이 있다.
다만 나만 변심했었고,
많은 일들로 아팠고,
그리고 다시 평안받기 위해 돌아왔다.
그리고 나를 받아준 자연과 이 시골이 더 아프지 않도록 더 노력하고 힘쓸 것이다.
자연이 아프지 않게,
농업에 더욱 힘쓰고, 농민이란 인식이 좋아질수 있도록,
서울 도시에 살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걸 알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