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
남편과 나는 세계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을 떠난 지 약 2년 만이었다.
마침 한국에 입국했을 때는 1월 말이었고, 그때쯤 뉴스에선 우한 폐렴이라 불리는 중국의 신종 바이러스가 출몰했다는 속보가 나오던 때였다.
정말 운이 좋게도 적절한 시기에 한국에 와서, 힘들게 입국절차를 밟거나 비행기표를 못 구하는 일은 겪지 않았다. 가족들도 한국 들어온 것이 신의 한 수였다며 입이 마르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코로나 19는 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빠르게 퍼졌고, 서울에 거처를 잡았던 우리는 매일 밖에 나가는 것에 두려움을 떨었다.
이제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최대한 가지 않으려 한다.
몇 날 며칠을 남편과 이야기하며,
우리는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서울에 있는 걸까
인터넷만 있으면 우린 어디서든 살 수 있잖아!
나중에 핀란드에서 살고 싶다고 했잖아. 그게 자연 속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어. 한국에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 때문에 사람 많은 곳은 이제 불편해
더 많은 장점과 단점을 나열하며 토론을 했다.
결론은 우리는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다 였다.
우리 둘 다 수도권에 10년 이상을 살았지만 원래 시골사람들이어서 우리는 누구보다 시골의 불편함을 잘 안다.
그리고 서울의 편리함도 너무나 잘 안다. 그냥 한국에 있었다면 서울에 계속 살고 싶었겠지만,
세계여행 다니며 더 많은 불편함과 외로움을 겪었기에,
우리나라에서 시골의 삶은 너무나도 편리하고 감사한 삶이란 걸 우린 알아버렸다.
한국의 시골도
조금만 차 타고 나가면 마트, 병원(말 잘 통하는 의사가 있는), 영화관이 있고,
쿠팡 배달(새벽 배송은 아니지만), 마켓 컬리도 다음날이면 배송이 된다.
한국의 시골에 사는 것은 캐나다의 3번째 큰 도시 캘거리에서 사는 것보다 편하다.
코로나 19가 우리의 귀촌에 가속을 달아주었고,
우린 그렇게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집을 내놓고(5개월밖에 살지 않은), 귀촌할 수 있는 집을 알아보았다.
우리는 귀촌 귀농의 지원이 제일 빵빵한 곳을 찾아갈 생각으로 이곳저곳 문의를 많이 해보았다.
그리고 우린 그렇게 "그곳"으로 정했다.
다음 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