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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Sep 14. 2020

농사가 좋다.

밭의 묘미와 농사의 기쁨


 나는 더덕밭에 매일 간다. 사실할 일이 없음에도 간다. 의자 하나 가지고 더덕밭에 멍하니 앉아 있을 때도 많다. 할 농사일이 산더미여도 나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시골에 내려온 이유이기도 하다.

어디에 쫓기지 않고 내가 우러러 나와 열심히 일하는 자발성. 

스트레스 없는 노동.

그리고 일하고 난 뒤의 상쾌함. 


 더덕밭에 가면 산새 소리와 물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자연소리와 나의 풀 매는 소리만 있을 뿐.

32년 인생을 살며 자연에서 살아야 마음이 편하고 복잡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자연에서 온 건강한 음식은 약이고, 자연에서 오는 건강한 소리는 명상이다.


 감사하게도 우리 더덕밭 옆엔 계곡 물이 졸졸 흐른다. 더덕은 산 밑 땅이 최적이기 때문에 더덕밭에 가노라면 계곡 캠핑을 가는 것 같다. 더덕밭에서 밭을 매다가 옆 계곡에 가서 장화의 흙을 털어내고 손도 씻는다. 그리고 가져온 새참과 간식들을 꺼내어 물소리를 들으며 물 멍을 하며 오물오물 생각 없이 먹는다. 차가운 계곡물에 손끝이 닿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있던 걱정거리가 계곡물과 함께 씻겨 내려가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자연에서 살다 보니 나도 참으로 많이 변하게 되었다. 모든지 내려놓게 되고 차분해지고 시끄러운 사람을 곁에 두지 않는다. 이젠 장화에 헐렁한 무채색 난방과 퀄리티 좋은 목장갑과 조금 찢어져야 멋진 일하는 바지를 입는 사람들이 멋들어져 보인다. 내가 이렇게나 변했다. 사람은 변하면 안 된다는데 나는 참으로 많이도 변했다. 


 승무원 시절의 나는 화려한 걸 동경했고 남들의 눈치를 보았고 남들이 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뒤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단편적인 예를 들면 손톱에 매니큐어나 젤 네일을 하지 않으면 내 손이 부끄럽다는 생각까지 했다.) 남들과 비교하고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나 자신에 진절머리가 났을 때 나는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돌아와 나 자신을 위해 농부가 되었다. 





그리고 우연하게 본 박노해 시인의 '밥상에 앉아'라는 시는 나에게 둔탁한 울림을 주었다. 


밥상에 앉아


                        박노해


여기 앉아야 산다

누구라도 그 누구라도


인간은 하루 세 번

밥상에 앉아야 산다


밥상에 모여 앉아

식사기도를 올린다


인류를 먹여 살리는

저 햇살과 바람과 대지와

허리 숙인 농부들을 생각하며


인류의 목줄을 쥔 거대 자본들이 

씨앗과 농지와 유통을 장악해가는 

소리 없는 전쟁을 지켜보며


밥상에 모여 앉아 

식사기도를 올린다


여기 앉아야 산다

누구라도 그 누구라도



 농사는 전 세계 인류를 먹여 살리는 일이다. 농부 한 명은 약 5명~100명의 국민들을 먹여 살린다. 자긍심을 가져 마땅한 일이고 농부에게 감사함을 느껴야 마땅하다. 농부가 돈을 벌어야 더 품질 좋은 농산품과 작물을 생산하고 토양을 다시 살리기 위해 투자를 하는데 순수익이 적거나 없거나 마이너스니 농부를 하려는 사람도 없게 되고 농부의 가치와 농산물의 품질도 다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인류를 먹여 살리는 햇살과 바람과 대지, 허리 숙인 농부들을 생각할 의무가 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삶은 어떻냐고 물어보는 동기들이 많다. 당연 너무 만족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인생에서 행복을 느끼는 중요한 척도가 있겠지만, 나의 척도는 자연과 함께하고 좋은 농산물의 음식 맛있게 먹는 것이다. 돈도 중요하지만 천지가 먹을 것 속에 있으니 돈이 없어도 마음이 불안하지 않고 더욱 풍요롭다.

언젠가 식량전쟁이 일어나도, 기후변화로 농산물값이 폭등을 해도 농부들은 먹거리 걱정은 없을 예정이다.

더덕꽃


나는 나에게 인생의 이치를 깨닫게 해 주고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고 자연의 순환고리를 배울 수 있게 해주는 나의 직업 농업이 너무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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