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수 Dec 23. 2020

그 여자는 왜 승무원복을 벗고 농부가 되었을까

농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



뭐? 농사? 네가 농부가 되겠다고?



 직업 중에서도 유난스러운 조직이 있다. 항공사 승무원들이다. 화려하게 옷을 입고, 단 한올의 머리카락도 흐트러 지면 안되고, 두꺼운 화장을 하며 말투부터 몸짓, 행동까지 어긋된 행동(?)을 하면 벌점을 받는...(안경을 써도, 다리를 꼬고 있어도, 껌을 씹어도, 유니폼을 입고 큰소리로 통화를 해도 안되었다) 다 큰 성인들이 봤을 때 눈살 찌푸리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항공기 승무원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도 많다. 나도 너무나도 되고싶었으니까. 

그런데도 승무원을 그만두고 농부가 된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만족, 기쁨에 대한 기준이 많이 달라졌다. 승무원은 하려고하는 사람도 많고, 적당한 인물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더덕농사는 하고 싶은 사람은 적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항공기 승무원, 그리고 사무장으로 8년을 일한 나는 매일 손톱에 깔끔하게 젤 네일을 해야 마음이 편했고 스트레스도 풀린 것만 같았다. 지금의 나는 흙이 잔뜩 낀 나의 손톱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낀다. 오늘도 열심히 일했구나- 자기만족을 하면서 말이다. 

친했던 친구들은 "뭐? 농사? 네가 농부가 되겠다고? 너 시골에서 살 수 있어?"

장갑을 꼈어도 흙은 어차피 묻어! 그럼 왜 장갑을 끼는거야? 아무렴 어때. 그냥 내 모습이 좋아!

라며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그 친구들에겐 상상도 못 해본 일이기 때문에 나는 그 친구들의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연예인을 하겠다는 친구한테 "뭐? 네가 연예인을 하겠다고?" 라고 하는 나와 같은 것이니까. 


  나는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우리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더덕 농사를 지으셨다. 나는 자연스럽게 흙에서 자랐다. 밖에서 놀다 들어오면 온통 옷에 붙어있는 아주까리를 떼느라 바빴고, 겨울엔 딸기를 마당에서 따먹었고, 가을엔 호박잎을 따다가 할머니에게 된장찌개를 끓어달라 졸랐고, 여름에는 앵두나무에 올라가 앵두를 따먹다가 떨어진 적도 있다. 봄에는 학교 가는 길,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가 좋아하는 쑥을 뜯어 가방에 보관했다가 드리곤 했다. 


우리 더덕농장의 귀여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실 나는 화려한 삶이랑 어울리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다니느라 너무 힘이 들었나 보다. 8년 동안 일하면서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승객에게 욕먹는 일은 다반사였고, 맞기까지 해 봤으니 말이다.  승객에게 욕먹는 일도 힘들었지만 여자가 많은 그룹에서 적응하기도 참으로 힘들었다. 소신 있는 말을 하면 안 되는 조직의 특성도 나와 맞지 않았다. 오롯이 내 탓이라 생각하고 나는 맞지 않는 옷을 벗고 내려놓았다. 그러니 너무나도 가볍게 행복한 삶이 나에게 다가왔다. 


 무엇이든지 억지로 하면 탈이나. 자연 순리대로 놔두면 싹이 나게 되어있지.



 더덕 농사에서 억지로 뿌리를 크게 만들고 줄기와 잎을 빨리 키우기 위해 영양제를 주고 액비를 주면 오히려 더덕잎은 노래지고, 뿌리는 썩게 된다. 그래서 아빠는"온도와 습도만 맞는 환경만 제공해 줄 뿐이야. 나머지는 식물이 알아서 할 거야. 우리는 좋은 환경을 위해 노력해 주면 돼. "

 농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똑같다.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과 살아가는 식물들의 인생. 다른 게 하나도 없다. 

자연을 보호하면서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자연의 냄새를 맡고 자연의 공기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나의 인생도 그렇다. 내 안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내 안에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진짜 나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남의 이야기만 듣고 남의 것이 좋아 보여 따라가고 부러워하면 나의 인생만 힘들어지게 된다.

농사는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너무 다그치지도, 그렇다고 과잉보호하지도, 참견해서도 안된다. 그냥 좋은 환경만 만들어 줄 뿐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안의 소리를 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2년 전, 항공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 1년과 해외생활 1년을 했다. 나만의 시간을 정말 많이 가졌고, 명상과 기도를 많이 했다. 그렇다고 내가 득도했다거나 여느 종교인들처럼 독실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그냥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들이 풍부했을 뿐이었고, 2년 동안 나를 알아가는 탐구의 시간 정도였다. 그 시간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내 인생 통틀어 값진 시간이었다 말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환경적으로 삶을 살고 친환경적인 농작물을 먹고 친환경적인 생활을 하는 그런 삶. 자연과 함께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나는.




하얀 나의 슬리퍼에 흙이 묻었다. 나의 하얀 도화지 인생도 흙으로 채워지길.
동네 개
까치한테 미안하네, 네가 먹어야 하는 건데... 
흑흑흑 No. 흙 흙 흙 좋아 흙흙
사과야? 대추야? 나는 사과대추야.
더덕향. 건강해지는 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