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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Dec 25. 2020

겨울에 보내는 손녀농부의 편지 #1

할머니의 더덕농사, 아빠의 더덕농사 그리고 딸과 사위의 더덕농사이야기



농부 전용 '에어파', 이번 김장철에 찰칵 찍어봤다.



  김장철이 지나고 예산군 지역 농부들은 조금 한가해졌다. 밭들은 얼어붙었고, 논들도 휑하니 겨울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다. 새들은 먹을거리가 없어 엄한 밭들에 앉아 모이를 찾고, 길고양이들은 조금이라도 햇볕 잘 들고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겨울 내내 하우스의 지하수가 얼지 않도록 매일 모터도 돌려주고, 집에 가다가 빙판에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엉거주춤 다닌다.







추수 후 논들의 모습



   우리 더덕 농장은 겨우내 캤던 더덕 1년근들을 잘 선별하는 작업을 조금씩 하고 있다. 2년 근으로 옮겨 심을 종근들, 새싹 더덕용, 1년 근으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더덕 등으로 말이다. 이 작업은 아주 간단하지만 시간이 꽤나 걸리는 작업이다. 하루에 한 박스씩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모자 속 길고양이 맹수


더덕 선별 작업을 하면 맹수는 자끔 나의 모자 속으로 들어오곤 한다.


1년근 더덕들



  약 한 달 전쯤 심었던 시금치. 시금치 새싹들이 잘 올라오고 있다.

처음 심어본 시금치는 추위에 강한 아이들이다. 아주 잘 자라주어 고맙다.

척박한 땅에서 새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신비롭다.

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겨울에는 더욱 신기하다. 이 추위를 뚫고 나온 아이들은 얼마나 건강한 식물일까. 시금치에 영양분을 다시금 찾아봐야겠다.

시금치들 (2020년 12월)

할머니,

 오늘도 나는 밭에서 캔 더덕들을 이쁘게 골라 놓고, 새싹 더덕들을 키우기 위해 하우스에 식재를 했어. 어렸을 때 할머니와 더덕 밭에서 놀던 기억(난 놀았지만 할머니는 일했지.) 더덕 까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  이젠 내가 더덕을 키워.

어렸을 땐 몰랐는데, 더덕들이 왜 이리 통통하고 이쁜지 몰라. 맛도 옛날보다 더 맛있어진 거 같아 (내가 키워서 그런가!) 아삭하고 달콤해. 

할머니,

 나, 농부가 되고 처음 맞는 겨울이야. 할머니라면 이 겨울 농사를 어찌 보냈을까.

그 생각을 하며 더욱 더덕 한 뿌리 한 뿌리를 소중히 여겨, 그리고 더덕들이 겨우내 잘 잠들어 있을 수 있도록 정성 들여 보관해.

아, 그리고 나와 남편은 '새싹 더덕'이라는 더덕을 출시했어!

아직 한국엔 시장이 없지만, 남편과 나는 새싹 더덕이 더 영양분이 풍부하다는 걸 꼭 알리고 싶어.

좋은 건 혼자 먹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 할머니!

춥지만, 할머니도 흙 속에서 평안을 찾았지? 나도 흙에서 답을 찾을게!

그럼 또 편지를 쓸게.



- 삽다리 더덕 손녀 -



어때 할머니? 아주 파릇파릇하고 향도 더덕향이 자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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