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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Jan 16. 2021

그 나이에 왜 농사를 짓냐고요?

세계여행은 내가 농사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 하우스 가는 길


나 32살, 남편 34살. 

우리는 농사꾼이다. 농사를 업으로 삼고 땅에서 땀 흘려 일하는 농부이다. 나와 남편은 농사를 사랑한다. 그리고 농부가 가치 있는 직업임을 널리 알리고 싶은 청년들이다. 농부는 생명을 키우고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우리 국민들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막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나라의 농업에 대한 기피현상이 없어지길 바란다. 또 농부가 되어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란다.

 세계 여행하며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 농부라는 직업에 리스펙을 준다는 것. 40년 동안 농부였던 우리 아빠를 딸인 나는 저들처럼 자랑스러워했던가라는 생각에 코가 찡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아빠와 같은 농부가 되었다. 지금부터라도 하나 둘 농부들을 위해 일을 하고 농산물을 안전하고 믿음직하게 키워 나갈 것이다.

그 부부는 왜 세계여행을 떠났을까. 

 남편은 한국이 망해도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곳에서 '자신의 삶의 보람'을 느끼지 못했고 조금 더 뜻깊고 의미 있는 일을 갈망했다. 나 또한 여자들의 로망이라 칭했던(지금은 아니지만) 승무원을 하다가 퇴사를 했다. 그렇다. 우리는 세계에는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생생한 현장에서 보고 배우고 느끼며 엄청난 일들을 시작해 보자! 포부를 보이며 세계여행을 떠난 것이 맞다. 

 도를 깨우친 스님처럼, 어느 목사님처럼 큰 그릇이 되어 올 줄 알았고, 사업을 할 때 모든 사람의 의중을 간파할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길 줄 알았고, 영어는 더욱 유창하게 거기다 스페인어까지 유창해질 줄 알았고, 우리에게 알 수 없이 흘러나오는 feel은 힙한 파리지앵 같이 철철 넘쳐흐를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 세계여행은 영어 쓸 일이 많지만, 깊고 심도 있는 영어까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고 에스파냐어는 '얼마예요?' '감사합니다'정도면 불편함이 없었다. 나는 스님이나 목사님처럼 큰 그릇이 되어 오지 않았고, 나의 모습에서 힙함은 없고 자연스러운 꼬질꼬질함이 가득했다. 

우리가 변한 것이 있다면


며칠 안 씻어도 거리낌이 없어졌다는 것.

세탁기 없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손빨래가 익숙해졌다는 것.

아무 곳에서나 잘 수 있다는 것. 

벌레가 나와도 기겁하지 않는다는 것. 

한벌의 옷을 교복처럼 입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것. 

유행에 민감하지 않게 된다는 것. 

소비가 줄었다는 것.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환경을 더 생각하게 된다는 것. (인간이 우리 자연을 해치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들이 많다)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다는 것. 

편견이 많이 없어진다는 것.

행복은 돈과 무관하다는 것. 하지만 돈은 우리를 편하게 해 준다는 것.



엄청난 것들이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조금 민감하지 않은 평범한 여자 사람과 남자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 시도해보고, 실패도 해보고 안된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느꼈다. 거창한 것은 없었다. 조금씩 꾸준히 하며 소소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꿈은 우리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들 쪽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것이 농사였다.

흙 묻은 것에 거리낌이 없어지고, 흙 묻은 옷을 입고 식당을 들어가도 자신감이 있었고,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고, 벌레가 나와도 기겁하지 않고 조심히 다른 곳으로 옮겨줄 주 알고, 한벌의 옷을 교복처럼 입을 수 있고, '유행이 뭐예요?'라고 할 수 있고, 환경을 생각하고, 행복함을 생명이 솟아나는 것에 무진장 느낄 수 있는 직업. 

땅이 나의 직장이고, 하늘이 나의 상사인 '농부'가 나의 직업이다.


진짜 농부가 되니, 더욱 만족스러웠다. 더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싶어 지고 전문적인 지식도 쌓고 싶은 욕심이 생겼지만, 급하지 않게 하나둘씩 하려고 마음을 다시 잡곤 한다. 우선 땅이 좋아야 하기에 땅이 좋아하는 자연퇴비를 주고, 밀과 옥수수 같은 것을 심어 땅이 기름지게 한다. 이것이 연작을 할 수 있게 하는 느리지만 건강한 방법이다. 

 우리 세대부터는 느리고 불편하지만 자연적인 방법을 고수해야 다음 세대가 살 수 있다. 불편하게 살 각오를 해야 한다. 돈이 있으면 편하게 살지만 우리는 돈만으로 살 수 없다. 불편하게 살아야 다 같이 잘 살 수 있음을 모두가 인지 했으면 한다. 


100세? 150세까지도 할 수 있는 직업


65세가 정년인 세상이 왔다. 하지만 이젠 그 두배는 더 살지 않을까? 정년이 없는 직업이 농사다. 정년 걱정 없이 농사 베테랑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1차 산업인 농업은 절대로 없어질 일이 없으니까. 

만능맨이 될 수 있는 직업


농사를 접하고 놀란 것은 할 줄 아는 게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농사, 경영, 마케팅, 영업, 판매, 회계, 디자인, 웹, 무역, 생명공학, 지질학, 종자학, 유기 농학 등 깊진 않아도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어야 했다. 혼자서 하려면 많은 공부와 시간들이 필요했다. 농사로 성공했다는 것은 만능맨이 되었다는 것을 뜻하지 않을까?



 이 젊은 나이에 농사를 짓냐고 물어본다면, '젊어서 하면 더 좋은 직업이다'라고 말한다. 

오늘도 종자를 심고 흙을 만지며 스트레스 없는 삶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젊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작은 세계여행을 하길 바라며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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