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월 - 서른이 되기 전에 가봐야지, 유럽여행.

02 _ 공연을 열세 편이나 봤다.

by 예슬

<공연을 열세 편이나 봤다>



처음 목표가 공연과 극장 방문이었던 만큼, 나는 목적을 지키기 위해 교통편에서 하루 종일 이동하는 날들과 경치 구경하러 가는 스위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 속에 공연 일정을 가득가득 집어넣었다. 영국에서 첫날은 라이온 킹을 시작으로, 아마데우스, 레미제라블, 해리포터-저주받은 아이 1,2, 크리스마스 캐럴을 5일 여정에 꽉꽉 채워 넣었고, 독일에서도 따르뛰프를 시작으로, ‘나의 투쟁, 유리 동물원, 메데아, Fever room, Return to the reims, 두려움은 영혼을 잠식시킨다’까지 7편의 공연을 눈에 담았다. 뿐만 아니라, 공연을 못 보고 극장 밖에서 사진만 찍은 곳도 있으니 짧은 여정 동안 꽤 많은 곳에 내 발자국이 찍혔다.

셰익스피어와 찰스 디킨스의 아지트 '조지인'

나에게 영국과 독일을 둘러보는 것은 연극사 특수 연구 중간, 기말시험기간마다 날 괴롭혔던 거장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찾아보는 여행이었다. 셰익스피어와 찰스 디킨스의 아지트였다는 술집이 지금까지 보존되어있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맥주를 마시는 내 모습이 비치는 유리창 너머엔 아주 오래전 그들의 공연이 활발하게 펼쳐지는 마당이 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눈을 감고 그려지지 않는 그 시절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쿵쾅거렸다.



학부 전공이 영어영문학과지만 거의 연극영화과 영어동아리처럼 대학생활을 한지라, 솔직한 영어실력은 형편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영어라서 모든 공연을 나의 짧은 영어가 아니면, 비언어적 요소를 통해 느껴야 했다. 운이 좋게 ‘따르뛰프’ 같은 경우는 대학원 마지막 공연으로 준비를 했던 작품이어서 모든 대사를 이미 한국어로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멜로디로만 들리는 독일어가 날 방해할 수는 없었다.



수많은 웨스트앤드의 뮤지컬 중 그나마 조금 더 친숙하다는 이유로 라이온 킹과 레미제라블을 선택했다. 공연 연출론 수업에서 라이온 킹을 연출한 줄리 테이머에 대해 배웠고, 나보다 육 개월 먼저 이 곳에 있었던 상은이가 레미제라블에서 열연하고 있는 배우의 외모와 노래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줄리 테이머가 직접 만든 동물 인형은 하나하나 꺾이는 관절이 매력적이었다. 상은이가 열변을 토하며 말했던 에포닌은 우리나라 뮤지컬 배우들처럼 예쁘지는 않았으나, 정말 에포닌으로 존재했다.



역할을 소화하는 배우는 앞으로도 계속 바뀌겠지만, 강산이 이미 한 번 변하고 새로운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시간 동안 여전히 같은 내용과 형식으로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대작으로 살아있다는 사실이 너무 부러웠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했다고 하기엔 양심이 찔려 배가 아플 자격은 없지만, 이 공연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규모가 내 인생에 잠깐이라도 스쳐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불어 마음이 시렸다. 나도 언젠간 이런 작품에 발이라도 걸쳐 봤으면 좋겠다.



이 쓸데없는 생각은 해리포터 2부 공연을 앞두고 가방검사를 하는 진행요원과 갈등하며 사라졌다. 가방 안에 내일 아침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미리 사서 넣어두었는데, 공연장엔 음식물 반입이 금지니까 뜯지도 않는 샌드위치를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자리에서 다 먹으라는 거였다. 라이온 킹 진행요원은 마켓에서 먹다 남긴 버거를 포장한 봉투도 그냥 들여보내 줬는데, 여긴 얄짤도 없었다. 한국의 연극인으로서 영국의 극장 예절을 당연히 인정하고, 맡은 바를 열심히 행하고자 하는 직원의 성실함도 알았지만 괜히 심통이 났다. 영어회화 시간에 출튀를 조금만 덜 했다면, 난 한 문장이라도 더 구사하며 내 샌드위치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장면만큼은 편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과 후회가 주렁주렁 달려 다음날의 배고픔도 느낄 새가 없었다.



영국은 배우의 연기에너지가 꽤 강렬하게 전달되는 편이었다. 물론 독일어와 영어를 받아들이는 한국인 박예슬의 언어 상황도 큰 몫을 했겠지만, 아마데우스와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배우가 전달하는 감정의 크기는 내가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잠시 동안 잊게 만들었다. 겨우겨우 흐름만 이해하고 공연을 보고 있었는데 모르는 사이에 난 웃고 있었고, 어떤 장면에서는 가슴이 저릿했다.



큰 무대 공간을 다 채워내는 배우의 목소리와 움직임을 느끼고 있자니, 함께 나누고 싶은 얼굴들이 많이 떠올랐다. 같이 공부했던 영훈이와 재은이랑 이 공연을 봤으면, 밤새 수다를 떠느라 다음날 일정은 4시부터 시작했을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은 사람은 내 옆자리에 앉아 졸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고, 소중한 인연을 세어보면 열 손가락은 쉽게 접을 수 있다 사실이 감사하다. 평소에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독일에서는 연출의 흔적을 많이 발견했다. (믿거나 말거나 이건 내가 독일어를 못 알아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연기전공과 모든 수업을 똑같이 듣기는 했지만, 수료증엔 연출전공이라고 쓰여 있다. 어쨌거나 연출이라는 단어에 메여있는지라 지루함이 느껴질 때면 조명과 무대의 틈새에 숨어있는 연출이 남긴 고민의 흔적을 찾아보고, 관객의 반응을 관찰하기도 했다. 이 공연의 연출이 전달하려 했던 것을 내가 느끼고 있을까. 혼자 질문을 던지고 답했다. 열두 편의 티켓이 내 다이어리에 차곡차곡 끼워지는 동안 나름대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공연을 즐기는 방식을 만들어갔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시민에게 자유로이 열려있는 극장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테이블마다 작은 잔에 담긴 음료를 주문하고 앉아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꽤 시간이 잘 가는 경험이었다. 공연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지, 서로의 일상에 대한 수다를 떠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무슨 말이 오갈까 상상하는 재미에 푹 빠져 한 참을 구경했다.



잘생긴 독일 아저씨가 찍어준 브레히트 님과 나

열세 편의 공연을 보고 열네 곳의 극장 화장실을 이용했다. 언제 다시 갈지 모르는 그곳에 내 흔적을 남겼던 행위는 연극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한국에서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왔다고 허풍 떠는 나의 짧은 영어에 놀랍다며 맞장구를 쳐주던 레지던츠 극장 아가씨의 표정이 생생하다. 베를린 앙상블 앞, 브레히트 동상과 셀카를 찍고 있는 나에게 브레히트가 누군지 아냐고 물어보던 독일 아저씨의 잘생김도 기억난다. 샤우뷔네에서 구입한 에코백은 일 년 내내 들고 다니며, 하나 더 살 걸 후회하는 나의 잇템이 되었다.



공연을 보고 숙소로 들어가는 길엔 어느 순간 피곤함이 함께였다. 하지만, 내가 사진 찍을 땐 잠깐 어디로 숨었는지 아무리 자세히 봐도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해리포터 극장 앞에서 찍었던 셀카를 보다가 생각난 쓰레기통에 들어가던 샌드위치를 바라봐야 했던 순간도 지금은 웃음이 피시식 터진다. 그 웃음에 꼬리를 물고 웃다 보면 기분이 좋아져, 나에게 이런 추억들이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게 느껴진다. 분명 글을 쓰다 보니 배가 조금 고팠단 것 같은데, 이내 잠잠해졌다. 이 경험들은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나 보다.


스물아홉 1월은 유럽에서 공연을 열두 편이나 배부르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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