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hki Kuramoto - Meditation
많은 음악을 자주 듣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 번 귓가에 맴돌아버린 음악은 계속해서 찾아 듣는 경향이 있어요.
제 플레이리스트에는 오래도록 머물러있는 음악들이 있네요.
제가 그냥 흘려보내는 순간들을 대신, 기억해주는.
그래서 음악을 들으면, 다시 그 순간을 찾아내 주는.
시간이 되어 함께 흘러가버린 순간들을 기록하고 회고하며
당신의 순간도 꺼내고 싶게 만드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하나의 글을 시작하고 마무리 짓는 시간이, 내 욕심이 커질수록 점점 길어진다. 두 달 전 나에게 글쓰기의 재미를 알려준 어떤 분은 '여러 번 읽으며, 거듭 생각하는 것'을 강조했지만, 계획은 많고 능력은 부족한 나에겐 조금 힘든 일이다. 한 번은 초고를 빨리 쓰고 싶은 마음에, 끝맺음 문단을 미리 만들어두고 서두부터 달려가는 방식으로 글을 써봤다. 하지만, 어느 순간 채워지지 않는 중간 이야기 대신 이미 오늘의 권장량이 넘쳐버린 견과류만 입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계속되는 시행착오는 다양한 해결방법과 오기가 생기는 의지를 창조한다. 그래서 어젠 마음에 들지 않는 초고라도 어찌 됐건 마무리를 한 후, 오후 3시에 예정된 약속을 가야겠다고 꿀꺽 다짐했다. 정 안되면,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등장인물을 죽여서라도 마침표를 찍어야지. 아, 생각해보니 내 글은 다 내가 주인공이구나.
마지막 단락이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쭉 하다가 나를 기차에 태워 보냈다. 그리고 더 이상 뒤 따르는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다. 기차를 탄다는 행위는 하나의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남은 여백이 나쁘지 않다고 애써 합리화를 시켰다. 게다가 머리도 감아야 하므로 더 이상 매달릴 시간이 없었다. 노트북을 과감하게 닫고 샤워를 하러 갔다.
외출 준비의 마지막 순서는 볼터치다. 활짝 웃으면 씨익 올라가는 볼의 능선을 따라 블러셔를 채웠다. 차가운 공기가 닿기도 전에 발그레해진 광대가 나갈 준비가 완료된 것을 알려주었다. 설을 앞두고 집집마다 애정의 기운이 올라가 한반도가 더워질 것을 염려한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기에, 마지막으로 마스크를 챙기고 집을 나섰다.
처음 가보는 약속 장소와 오랜만에 만나는 언니를 생각하니 발걸음에 리듬이 생겼다. 하루하루 이벤트 만들기를 좋아하는 나의 의미부여 기질이 스멀스멀 발끝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이미 내 마음은 혼자 들뜬 채 깨방정을 떨기 시작했다. 예전의 나라면 기대치를 최대로 올린 다음, 맞닥뜨린 현실이 그렇지 않을 때 격하게 실망하고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른은 그렇지 않다. 붕 뜬 감정의 밸런스를 맞춰내는 여유를 만들 수 있다. 꼬인 이어폰 줄을 풀고 천천히 플레이리스트를 훑어보았다. 어렵지 않게 지금의 감정을 차분하게 낮춰줄 수 있는 음악을 찾았다.
언니와 내가 한 동안 열심히 들었던
Yuhki Kuramoto <Meditation>
이 곡은 우리가 기초연기 수업을 들을 당시, 각자 표현할 수 있는 날 것의 감정을 끌어내도록 훈련시켜주던 노래다. 일주일 간 준비한 장면을 발표하면서 겨우겨우 싹 틔운 정서가 최고조로 올라갈 것 같은 낌새가 보이면, 서서히 이 노래가 극장을 감싸기 시작했다. 노래의 도움을 받아 한 단계 한 단계 감정을 확장시켰다. 어느새 그렁그렁한 눈물이 떨어질 듯 말 듯 애교 살에 맺혔다. 은근히 뜨거워지는 얼굴의 온도를 느끼며 차오르는 감정에 집중했다. 누군가는 슬픔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겉모습 안에 기쁨, 애잔함, 괜찮음, 고마움, 따뜻함 등등 정말 많은 표현들이 찾아왔다 나가길 반복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감정은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도망가는 미꾸라지 같은 녀석이라 강렬하게 들어올 때까지 차갑게 오는 길을 열어 두어야 했다
발표를 준비하는 모든 팀이 다 이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우린 더 이 곡에 집착했던 걸지도 모른다. 강렬하게 정착할 가능성이 보일만큼 감정들을 차분하게 이끌어내야만 노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이 들었고, 듣고 싶은 노래였다. 게다가 마지막 기초연기 발표회에서는 이 노래의 재생 여부가 성공적인 연기의 잣대가 되기도 했다.
언니와 나는 기초연기 수업에서 처음 만났다. 감정을 꺼내는 방법을 서투르게 시도했던 서로의 모습을 아마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조차도 부끄러움이 생생해 자주 안 꺼내는 순간들을 함께했다. 이후, 다른 수업에서 우연히 만나 그 교과목을 진행하는 교수님의 개그 코드에 꽂혀서 친해지게 되었다. 아마 우리의 대화 중 50%는 교수님 흉내로 시작해, 그가 시도했던 개그 에피소드를 지나 존경하는 마음으로 마무리하는 양상을 띄고 있는 것 같다. 한 바탕 교수님 이야기를 하고 나서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내가 최근 시작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언니는 연기와 글쓰기는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감정을 꺼내서, 표현하는 것이 참 비슷하다고 말했다. 문득, 우리가 열심히 들었던 Yuhki Kuramoto의 <Meditation>이 생각났다. 새로운 훈련 방식으로 기초연기 장면 발표를 준비하던 날들처럼 이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쓴다면, 나에게 부족한 기초대사량을 높여주는 글 근육이 생기지 않을까?
노래가 머금은 나의 부끄러운 순간들이 떠올랐다. 눈 앞에 펼쳐지는 장면들을 꺼버리고 싶어 눈꺼풀을 꽉 닫아버렸다. 그냥 흘려보낸 일상을 기억하고 싶어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왠지 이 노래는 건드리고 싶지 않아 진다. 결국엔 찌질하고 오글거리는 과거에 대한 민망함을 해소하기 위해 이불 킥을 하다가 마지막엔 노트북을 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