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감동이었어' 활용백서

성시경 - 넌 감동이었어

by 예슬

많은 음악을 자주 듣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 번 귓가에 맴돌아버린 음악은 계속해서 찾아 듣는 경향이 있어요.


제 플레이리스트에는 오래도록 머물러있는 음악들이 있네요.


제가 그냥 흘려보내는 순간들을 대신, 기억해주는.

그래서 음악을 들으면, 다시 그 순간을 찾아내 주는.


시간이 되어 함께 흘러가버린 순간들을 기록하고 회고하며

당신의 순간도 꺼내고 싶게 만드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2주 전 취소되었던 촬영 일정이 갑자기 잡혀,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비가 온다고 한다. 평소에는 믿음직스럽지 않지만, 이런 날은 엄청 잘 들어맞는다. 간만에 등산 약속을 잡은 날, 정말 오랜만에 에버랜드를 가기로 한 날처럼, 내 마음 한 켠을 설렘이 가득 채울 때면 꼭 날씨가 질투를 한다. 이 촬영 또한 나의 버킷리스트니까 일기예보는 잘 들어맞을 것이다. 분명 백 프로 비가 오겠지. 나는 이미 들떴고, 날씨는 이런 나를 질투할 테니까. 혹시나 빗방울을 핑계로 일정이 취소될까 봐, ‘내일 비가 올지도 모른다니, 투명우산을 준비해 갈게요.’라고 먼저 메시지를 보내 두었다. 비가 오더라도, 빗방울이 맺힌 투명우산을 활용해 사진을 찍는다면 장난 아닌, 분위기가 연출될 테니까.



역시나,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오후까지 계속됐다. 약속 시간이 가까워지도록 일정을 변경하자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마음 졸이며 준비를 시작했다. 띠롱. 메시지가 왔다. ‘7시에 만나요’ 오예. 다행이다. 드디어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격파하는구나.



평소 밝은 이미지가 굳어있는 나는 서른을 맞아 과감하게 새로운 캐릭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내 트레이드마크인 반달 입모양을 과감하게 버리고, 촉촉한 눈빛을 탑재하는 것이다. 아련미가 흘러넘치는 분위기를 풍기며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걸어가는 성숙한 여자. 어떤 시련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을 가진 삼십 대가 내가 새롭게 연출하고 싶은 이미지였다. 그래서 새해 목표를 세우며 만든 버킷리스트에 '지금까지와 다른 분위기(절대 웃지 않기)의 사진을 찍자'라고 추가해두었다.



오후 7시 30분, 칼바람이 부는 반포대교 아래에서 추위에 싸우는 모델과 사진작가가 촬영을 시작했다. 허공을 향한 시선, 은근한 미소, 떨리는 눈동자와 같은 행위를 통해 우리의 컨셉을 채워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는 강가의 기온은 나의 체력도 함께 방전시켰다. 앞으로 더 긴 시간, 촉촉한 눈빛을 지속하기 위해선 주문이 필요했다.



너와 나 헤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데
하루가 너무 짧던 우리의 날들이
그래 그랬었지 널 사랑하기에
세상은 나에게 커다란 감동이었어



성시경 노래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든 집중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10초 안에 눈가에 눈물을 고이게 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주문이다. 이 노래와 함께한 시간이 길었던 만큼, 추억의 순간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들을 때마다 올라오는 감정을 보고 있으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가 된 느낌이었다. 역시나, 노래의 한 소절을 마음속으로 읊조리자마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내 눈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진다. 눈물이 떨어지려고 하는 찰나, 작가님의 오케이 사인이 귀에 꽂혔다. 눈물은 쏙 들어가고, 대신 성시경님께 감사하다는 마음이 차올랐다.



그 순간을 잃는다면 내가 살아온
짧은 세월은 너무나 보잘것없어



사진을 찍는 동안, 노래 가사와 멜로디가 내 주변을 둥둥 떠다녔다. 내가 겪었던 몇 번의 이별과 사랑이 녹화된 이미지가 뮤직 비디오처럼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너무 많이 들어서 어느새 다 외워버린 노래를 마음속으로 따라 부르며, 방전된 에너지를 채워나갔다.



되돌려 보려 해 너를 찾으려 해
너 없이 살아도 멀쩡히 숨은 쉬겠지만
후회와 그리움만으로는 견딜 수 없어
하루도 자신이 없어 도저히


성시경, <넌 감동이었어> 중.



촬영이 막바지에 이르자, 비가 멈췄다. 질투를 끝낸 하늘을 한 번 노려보는 사진으로 촬영도 끝났다. 잘 떨어진 일기예보가 밉지 않은 날이었다. 사진 속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오랜만에 뱉어본 '넌 감동이었어' 노래 가사와 잘 어울릴 거라는 묘한 확신이 들었다. 이 노래는 정말 정말 내 플레이스트에 오랫동안 있던 곡이니까.


이 노래가 기억하는 순간들은 다 울고 불고 있었을 거 같아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칼바람과 고군분투했던 이런 추억도 하나 저장해주고 싶었다. 성숙하게 서른을 걸어가길 바라며. 벌써 2월도 일주일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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