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월 - 졸업한 지 4년 지난 ‘연극동아리, 드라마’

07_연극영화과, 영어동아리

by 예슬


<연극영화과, 영어동아리>



비록 영어 등급을 제외한 성적으로 영어영문학과에 원서를 내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분명 영어 공부를 할 의향이 있었다. 학교를 들어감과 거의 동시에 영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도 시작할 만큼, 영어를 싫어하지 않았다. 게다가 내 방 책꽂이에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모아 온 해리포터 한글판과 영어판이 인테리어 소품을 가장한 채로 꽂혀 있기도 했다. 밝혀두지만, 해리포터 영어판의 첫 표지도 한글판만큼 너덜너덜하다.



영어에 대한 마음이 해보겠다는 의지에서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죄책감으로 바뀌기까지는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첫 중간고사 성적을 확인하고, 나는 영문학과에서 졸업과정까지 버틸 수 있을까 고민했다. 비록 그 걱정거리는 연애 문제가 내 마음을 다 차지해버리는 바람에 벚꽃이 져버림과 동시에 수면 아래로 잠식했다. 그땐 자신보다 사랑이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는 나이였다며 애써 합리화를 하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금은 아무런 가슴의 미동도 못 주는 그 당시 연애 걱정은 내 영문학도 1학년 생활을 무탈하게 넘겨준 은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덕분에 2학년이 되었다.



다시 한번 3월을 맞이했다. 작년의 나와 같은 고민거리를 갖게 될지 모르는 신입생들이 학교를 채웠다. 그들을 볼 때면 나 또한 새로 시작하는 한해에 대한 설렘이 요동쳤다. 그렇지만, 첫 수업들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면, 올해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마음이 더부룩했다. 건설적으로 학과를 바꾸는 것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이미 앞으로 10년은 거뜬히 우정을 나눌 수 있을 만큼 친해진 동기를 두고, 다른 사람과 수업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에서 전과 기준으로 삼는 학점이 아쉽게도 내겐 약간 모자랐다. 적성이 안 맞는데 어떻게 성적이 좋을 수가 있냐며, 전과의 기준을 성적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에 툴툴거리며 학교 밖을 나갔다.



학기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3월 첫째 주 목요일 오후 집에 가는 길, 작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졌다. 상징탑에서 정문까지 나가는 길에 동아리 가두모집이 한창이었다.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과 이리저리 관심을 보이며 기웃거리는 사람, 그들을 에워싸는 시끌벅적한 에너지가 시간과 공간을 가득가득 채우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학과는 당장 바꿀 수 없지만, 동아리는 지금 새롭게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패기만만한 의욕이 차올랐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 겨우겨우 열리는 빈틈을 뚫으며 평소에 관심 있던 연극 동아리를 찾았다. 운이 좋게 서로의 레이더망에 걸려들었는지, 연극 동아리 선배가 나에게 호객행위를 하였다. 눈 부시던 오후 햇살을 손으로 가리며 가입 지원서를 썼다. 며칠 뒤 간단한 오디션을 통과한 후, 울산대학교 극예술연구회 34기가 되었다.



학교생활이 달라졌다. 일분이 한 시간 같은 영문과 수업이 끝나면, 연극동아리 방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수업 사이사이 공강 시간에 더 이상, 코인 노래방에서 시간을 때울 필요가 없었다. 봄이 지나갈 때쯤, 첫 공연을 올렸다. 본격적으로 날이 더워지자 어떻게 하면 연극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마음에 들어왔다. 신기하게도 영어공부에 대한 걱정을 할 때와 달리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생각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음이 즐거웠다. 영어와 마주하지 못하던 숱한 시간들을 연극으로 채워내고 있었다. 그리고 난 여전히 영문학과 수업을 듣고 있었다.



똑같은 계절이 네 번 지나자, 연극 동아리에서 내 이름이 들어간 공연이 8개가 넘어갔다. 그리고 영어영문학과에서 내가 이수한 수업이 80학점을 넘어갔다. 어느덧 대학 졸업이 문턱으로 다가왔다. 두 개의 졸업장을 받게 되었다. 영어 영문학사가 찍힌 영문과 졸업장, 울산대학교 극예술연구회가 찍힌 동아리 졸업장. 기분이 묘했다. 대학 졸업장을 못 딸 것 같아 불안했던 날이 생각났다. 그런데 내 품에 졸업장이 두 개나 안겨있다. 고맙게도 울산대학교 연극영화과 영어동아리 같은 생활은, 울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연극동아리의 졸업장을 가져다주었다. 무사히 영문학과 졸업장이 내게 오는 길을 연극동아리가 얼마나 열심히 닦고 쓸었던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한 덕분에, 해야 하는 일을 끝까지 할 수 있었다. 덕분에 대학 졸업장도 못 딸 것 같던 내가 대학원에 가서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서 책상이 생긴 첫날, 두 개의 졸업장을 다 배치했다. 내게 필요했고, 내가 하고 싶은 두 가지가 앞으로 내 삶을 더 단단히 채워주겠지. 연극동아리는 내가 해야 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켜주었다. 그리고 지난 8년간 할 수 있어 행복했던 일을 찾아주었다. 그래서 난 내 인생에 동아리 생활이 있었다는 사실이 늘 감사하다. 그 여운이 길게 남아 스물아홉 3월, 난 4년 만에 대학원을 수료하고 다시 짧은 동아리 생활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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