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월 - 졸업한 지 4년 지난 '연극 동아리, 드라마

08_너는 드라마의 미래다

by 예슬



<너는 드라마의 미래다>



2018년 3월 나는 동아리 후배들과 같이 공연을 준비하게 되었다. 대학원 수료 후, 2월부터 울산에서 일을 시작했다. 겸사겸사 후배들에게 서울에서 배운 것을 가르쳐주며, 나의 배움 또한 정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일터의 사정으로 3월 1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약 3개월간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3월은 아무런 경제 활동 없이 동아리에서 후배들과 예술 활동만 하게 되었다. 대학원까지 수료한 딸이 후배들과 동아리 공연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하기 힘든 부모님께는 논문을 쓰기 위해 준비하는 공연이라고 둘러대고, 나는 꼬박꼬박 학교에 나갔다.



졸업 후 4년 동안, 일 년에 한 번 이상 정기공연을 관람하러 동아리를 방문했다. 해마다 새로 들어오는 후배들에게 내 소개를 하고, 함께 술잔을 부딪치는 것은 나의 연례행사였다. 게다가 당시 내 남자 친구는 작년까지 동아리 현 회원이었다. 덕분에 나는 크고 작은 동아리 소식을 꾸준히 업데이트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많은 고민 없이 공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는데,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과거의 나와 다시 대면하고 싶어 졌다.



우선, 제일 어려운 것은 여덟 살 차이 나는 후배와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워낙 후배들과 스스럼없이 지냈기에 먼저 말을 거는 것도 곧 잘했고, 정기공연마다 꾸준히 얼굴도장을 찍었기에 같이 동아리 생활을 하지 않은 후배들과도 편하게 카톡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제 내 나이가 스물아홉이다. 아무리 중간에 나와 공연을 함께 올렸던 징검다리 후배들이 있다 하지만, 가장 어린 친구와 여덟 살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니 그 녀석이 좀 어려웠다.



기수제인 우리 동아리에는 나보다 어린 선배도 존재했고, 나이 많은 후배도 있었다. 그래 봤자 그들과 나는 한두 살 차이였다. 그런데 내 앞에서 바가지 머리를 한 채 웃고 있는 녀석은 내가 대학교에 막 들어왔을 때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나도 이렇게 재가 어려운데, 재는 얼마나 내가 어려울까.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나이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가벼우면서도 적당한 선을 지켜가는 선후배 관계를 만들어야만 공연이 잘 올라갈 수 있다. 고민이 한창 일 때쯤, 내 휴대폰 화면에 반가운 선배 이름이 나타났다. 이런 부분에서 난 놀라울 만큼 운이 좋다. 고민을 시작하면 어느 순간 답이 날 찾아온다. 그렇다. 나에게도 한때 어린 날 불편해했을 선배가 있었다. 지금의 나처럼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후배를 두고 걱정을 했던 선배와 통화를 하니, 마음이 조금씩 편해졌다. 생각해보니 선배도 나와 동아리 생활을 같이 하지 않았다. 선배의 기억 속 내 첫인상, 나와 대화를 했던 다양한 에피소드, 선배의 뇌리에 박혀있는 박예슬 성장담을 나누며 알게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배가 동아리를 졸업하고 나서는 내가 동아리에 미래였다. 이 상황을 어떻게 격파해볼지 어렴풋하게 그림이 그려졌다.


‘너는 드라마(우리 동아리의 약자)의 미래다’


내가 졸업한 지금,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후배들이 우리 동아리의 현재고 미래다. 고로, 나와 여덟 살 차이 나는 그 녀석은 한 동안 드라마의 미래가 분명하다. 때로는 존중의 의미를 담아서, 어떤 때는 장난처럼 대화의 시작과 마무리를 ‘니가 드라마의 미래다’라는 말로 장식했다. 진지한 대화에선 은근히 눌러주며, 가벼운 분위기에선 툭툭 내던지며 관계를 풀어갔다. 어느샌가 그 후배 또한 ‘제가 드라마의 미래잖아요’라며 받아치기 시작했다. 주입식 교육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주입식 대화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린 꽤 돈독해졌다.



공연이 끝나고, 녀석은 입대했다. 지난 12월 동생의 전역을 끝으로 더 이상 군대에서 연락이 올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내 휴대폰으로 문자가 한통 왔다. ‘부대입니다’ 아직도 내게 연락을 할 군인이 있나 싶었는데, 그 녀석이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에 어설프게 섞인 군대 어투로 내 생일과 크리스마스 그리고 서른을 축하해주었다. 스물아홉이 지나가는 순간에도 군인에게 전화받을 일이 있다는 사실이 왠지 이십 대 초반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난 오래전 드라마의 미래에서 과거가 되었다. 하지만, 드라마의 미래가 내 인생에 이렇게 영향을 끼치는 이상, 지나간 과거라고만 나 자신을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언제든 미래가 손을 내밀면 닿는 거리에서 힘을 줄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겠다.


스물아홉, 3월 드라마의 미래를 많이 만났다. 어김없이 올해도 드라마의 미래를 만나겠지. 나는 그들의 찬란한 미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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