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월 - 졸업한 지 4년 지난 '연극 동아리,드라마

09_운도 없는 날

by 예슬


<운도 없는 날>



운도 없는 날’을 한 편의 일기로 정리해보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많은 사건과 갈등, 감정이 곳곳에 서려있어 무심코 툭 치면 수습이 힘들어질 것 같다. 하지만, 정리하지 않으면 스물아홉 3월을 넘어갈 수 없겠지.



멍하니 노트북을 바라보다가 바탕화면에 깔려있는 파일을 쭉 훑어봤다. 한숨이 깊다 싶었는데, ‘드라마 2018 겨울 정기공연’ 파일에 시선이 멈췄다. 꽤 오랜 시간, 지난 3월부터 쭉 지금까지 있던 파일이다. 공연이 끝난 이후, 제대로 열어본 기억이 없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파일을 클릭해보니, 1~9까지 자그마치 아홉 개의 항목으로 공연 내용이 정리되어있었다. 와, 정리정돈은 드럽게 못하는 나인데, 이렇게까지 일목요연하다니. 후배들과 하는 연극이라고, 나름대로 진지하게 긴장했던 게 분명하다. ‘2. 대본’ 폴더를 클릭했다. 눈대중으로 대충 스무 개쯤 되는 파일이 있다. ‘최종, 최최종, 최최최종, 진짜 마지막, 이게 진짜 마지막, 현석 선배한테 드렸으니 이게 완전 마지막’으로 정리되어있는 파일이 보였다. 언제부턴 간 똑같은 제목 뒤에 저장한 날짜가 덧붙어 순서를 맞추고 있었다. 맨 마지막 날짜에 저장된 파일을 클릭했다. 추억 속으로 소환 시작.



‘운도 없는 날’은 소설 ‘오베라는 남자’를 모티브로 후배들과 같이 재창작했던 작품이다. 원래는 대학원 졸업공연으로 준비했다가, 공연이 엎어지면서 한 동안 컴퓨터 속에 처박혀있었다. 그러다 작품을 구하는 후배를 만나 공연 소스를 넌지시 던졌다. 능동적인 21세기형 겁 없는 젊은이들은 구멍 쏭쏭 미완성 스토리를 덥석 물었고, 그렇게 창작의 고통 속으로 우린 함께 걸어 들어갔다. 등장인물에 대한 간략한 캐릭터 라인과 기승전결 구조 중, 기승과 결만 있었던 내 초고에 후배들의 아이디어가 근육이 되고 지방이 붙으며 살쪄나갔다. 게다가 배우의 본명 ‘운도’를 극 중 역할 이름으로 사용하면서 ‘운도 없는 날’이라는 제목도 만들어졌다. 죽고 싶어 하는 남자 ‘운도’가 없는 날, 죽지 못하는 운도의 ‘운’도 없는 날이라며 이중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그럴싸한 제목은 은근히 똘똘한 성우의 아이디어였다.



대본을 창작하며, 우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각기 다른 삶을 이십 년 이상 살아왔기에 같은 내용을 보고도 생각하는 관점이 다양했다. 특히, ‘여성’에 대한 주제가 담긴 에피소드를 만들 땐 그 열기가 꽤 뜨거웠다. 같은 여자지만 다른 생각을 가진 후배들을 보면서 나는 쉽게 물음표를 던지지 않았던 여성의 인권에 대해서도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불편함을 못 느끼고 익숙해져 버린 나의 성적 감수성에 반성하며, 동시대의 감각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예술가의 자질도 다시 한번 의심했다. 이 시간을 빌려 나보다 더 집요하고, 용기 있는 금희와 경빈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약 한 달 반 동안 진행되었던 공연 준비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제일 나를 힘들게 했던 생각은 후배들과 나의 상황 차이였다. 경제활동이 중단된 채, 동아리 예술 활동에 발목 묶인 나와 달리, 후배들은 수업도 들어야 했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다. 예전에는 모두가 같은 입장이라 내가 하는 만큼, 상대방이 해주지 못했을 땐 불만 제기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졸업을 하고 나니 불만 접수마저 조심스러웠다. 나는 좋은 선배가 되고 싶었지, 애매한 꼰대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후배들에게 역할 분배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개개인의 처지를 고려하다가, 어느새 나 혼자 연극을 이끌어가다 느껴지는 책임감이 무겁다고 징징거리고 있었다.



결국엔 공연을 며칠 앞두고 감정이 폭발했다. 다시 돌아가도 난 똑같은 방법으로 감정을 해소했겠지만,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데시벨이 높아지면 듣는 사람의 귀만 괴로울 뿐, 하고자 하는 말을 제대로 전달할 수는 없으니까. 난 정말 슬펐고, 실컷 울었다. 버거운 감정에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끝까지 안고 있었던 후배에게 ‘선배 지금 우리 행복하자고 공연하는 거잖아요’라는 말을 듣고서야 겨우 진정되었다.


맞다. 우린, 결국에 행복하기 위해 연극을 하고 있었다.


제3의 벽 밖에서 우리를 보고 있을 어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학과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비롯해 취업준비까지 껴안으며 연극 준비를 했으니까. 일 년에 두 번 밖에 없는 방학을 쪼개고 쪼개서 공연을 올리는 이유는 결국 행복한 인생의 순간을 가지고 싶어서였다. 비록 어쩔 때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좋아서 4시간을 계획하고 한 시간밖에 연습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우린 행복하기 위해서 연극을 하고 있었다.



각자 인생의 우선순위는 다르지만, 공연을 앞둘 때만큼은 우리 모두의 1번은 ‘연극’이었다. 그 시간만큼은 서로 양보하고, 희생하며 노력하고 있었다. 그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기준으로 삼고 느껴지는 간극에 서운함이 터진 것이다. 한참을 날 끌어안고 있던 후배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자 정말 중요한 것을 내가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행복하자고, 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



‘운도 없는 날’은 무사히 올라갔다. 마지막 공연은 조명 오퍼를 맡은 친구가 실수를 여러 번 할 만큼 분위기도 좋았다. 뒤풀이를 하며 고기도 잔뜩 먹었고, 술도 실컷 마셨다. 하지만, 미안함이 남았다.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은 입 밖으로 몇 번을 꺼내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진해져서 핵심 기억이 되었다.



운도 없는 날이 막막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공연의 과정을 아무리 근사하게 나열해도 진짜 속 알맹이를 드러내지 않으면 정리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안함을 꺼내는 것에 용기가 필요해서 꼬박 하루를 보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정기공연을 알리는 문자가 왔다. 난 이들의 행복을 응원한다. 서로의 행복함을 지키며 연극이 올라가길, 무사히 무대 위 행복 또한 인생의 한 순간으로 가져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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