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월 - 생각지도 못한 시작들.

10_예슬의 전당

by 예슬


<예슬의 전당>



벌써 사월이다. 드디어 2018 내 스물아홉에서 3분의 일을 정리했다. 지난 삼 개월을 정리해보니, 쉽게 떠오른 초반 아이디어에 비해, 생각을 구체화하고 실행하는 것이 어려웠다. 참 많은 시간들을 내가 그냥 흘려보냈구나 싶어, 지나간 순간들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쓸데없는 것만 잘 기억해 못 미더운 기억력만 믿고 그냥 그냥 살았던 하루들이 뭉쳐 어느새 일 년이 되었다.



동아리 정기공연이 끝나자마자, 난 서울로 올라갔다. 논문을 핑계 삼아 지도 교수님께 얼굴도장도 찍고, 지난 한 달간 제대로 하지 못한 데이트도 하고 싶었다. 짧으면 일주일, 길어봤자 이주를 계획하고 캐리어에 옷을 가볍게 넣었다. 두 달 뒤엔 다시 울산에서 일할 테니까, 두고 온 짐들에게 가벼운 인사만 남기고 기차를 탔다.



도착하자마자, 오랜만에 만나는 남자 친구의 볼 살을 꼬집으며 안부를 확인했다. 잡히는 면적이 줄어든 걸 보니 나 없는 서울생활이 많이 외로웠나 보다. 내 빈자리는 서울 자취방에도 역력했다. 내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똑같이 어지러운걸 보니 룸메이트들 또한 내가 그리웠나 보다. 언제든 돌아와도 낯설지 않도록 배려를 한 게 분명한다. 달라진 게 없네.



쉬는 듯 말듯하게 며칠을 보내고 논문 프로포잘 날짜에 맞춰 학교에 갔다. 미흡한 자료를 가자고 당당하게 만남을 요청할 수 없으니, 덜 당당하게 교수님께 인사를 드렸다. 기대했던 것보다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리고 또 한 번 깨닫는다. 나는 이런 부분에선 쫄보라는 것을. (나에겐 언제부터 생긴 건지 알 수 없는 교수 공포증이 약간 있다.) 안 어색한 척 발연기하는 나를 교수님은 능숙하게 반겨주셨다. 유럽에서 봤던 공연들과 대학원에서 엎어진 ‘오베라는 남자’를 울산에서 동아리 후배들과 ‘운도 없는 날’로 올린 것, 준비되지 않은 논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논문은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이런. 기다리란 말도 하기 민망해질 때쯤, 교수님께서 논문을 쓰기 위한 기초 경험을 길러보라며 몇몇 국가지원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다.



말씀하신 공고는 이미 나도 확인 했지만, 지원서를 쓸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교수님 입을 통해 지원해보라는 말을 들으니, 해야 할 것 같았다. 떨어지더라도 미래의 나에게 시도는 했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그 길로 집에 가서 지원서를 찬찬히 훑어봤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사업은 사업자번호가 필요했다. 예전에 동기 오빠와 극단을 만들었을 때 사업자를 낸 적이 있긴 했지만, 그땐 대표자가 내 이름이 아니었기에 별 느낌이 없었다. 막상 내 이름으로 사업자번호를 가져야 한다니 막연한 책임감이 크게 다가왔다. 세금을 제대로 못 내서 연체료 폭탄 맞으면 어떡하지? 나 혼자 1인 극단을 만들어야 하는 건가? 같이 사는 룸메 두 명부터 기획팀으로 소속시키면 어떻게 안 되려나? 혼자서 밤새 오만가지 질문으로 천장을 도배했다.



사업자를 내는 방식은 간단했다. 번호표를 뽑고, 서류를 작성한 후 번호가 되길 기다려 말하면 된다. 하지만, 절차 말고 보다 더 복잡하고 큰 고민은 상호명이었다. A4 한 장 반 분량의 글 제목을 짓는 것도 한숨을 다섯 번 이상 쉴 만큼 어려운데, 앞으로 내 이름만큼 많이 불릴지도 모르는 사업자명을 작명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선택한 것이 ‘예슬의 전당’이었다. 이 단어는 여러 사람이 게스트하우스처럼 오가는 내 자취방의 애칭이다. 작명 센스 좋기로 이름을 날리는 동아리 후배 경록이가 만들었다. ‘예술의 전당’과 내 이름이 합쳐져 치키한 B급 감성이 느껴지는 패러디라 탄생과 동시에 이곳저곳에 꽤 많이 써먹던 터였다. 그렇지만, 극단이나 문화예술단체의 상호명으로 내밀기엔 조금 많이 부끄럽지 않은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단어의 조합 중 가장 최선이 ‘예슬의 전당’이라니. 더 괜찮은 것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그토록 모질라 보일 수가 없었다. 비록 ‘예술의 전당’과 비슷해서 사업자명으로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에는, “제 이름이 '예슬'이라 '예슬'의 전당입니다.”라고 대답하긴 했다.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에 자긍심이 크지만, 공적으로 이용하기엔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더 나은 대안을 찾지 못했기에 뻔뻔함으로 그 순간을 이겨낼 수밖에 없었다.



얼떨결에 난 2018년 4월 ‘예슬의 전당’이라는 상호명을 가진 공연 연출가이자 개인 사업자가 되었다. 지원서 쓸 때 빼고는 사용하지 않아 이름만 있는 사업자지만, 그래도 주민등록번호와 여권번호 말고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새로운 번호가 생겼다. 아직까지도 못 외우는 그 번호를 꼭 쓸 일이 생기길 바라며 겁 없이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았다. 논문을 어떻게든 써보고자 서울에 올라왔다가 사업자를 내버렸다. 대책이 없다고 말해야 할지, 순간순간 주어진 현실을 빠르게 판단하여 유연한 대처를 한다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후자가 조금 더 긍정적인 것 같으니 그렇게 합리화를 해둬야겠다.



SNS에 사업자등록증 사진을 올렸다. 늘 어디로 튈지 몰라 더 이상 놀라지도 않는 친구들의 영혼 없는 축하와 함께 4월이 시작되었다. 어쩌다 일이 저렇게 흘러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스물아홉, 내 인생은 또 새로운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빨간 머리 앤의 명대사가 생각났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단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걸요!’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렀던 4월을 회상하니 벌써부터 웃음이 나온다. 멋진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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