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월 - 생각지도 못한 시작들.

12_ 뭐든 다 합니다.

by 예슬


<뭐든 다 합니다>



엄마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 첫 아르바이트는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라는 베스트셀러를 읽고 자극받아 열세 살에 부자가 되겠다며 열의를 불태웠다.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수소문해 집 근처 치킨 집 전단지를 돌렸다. 때로는 한 집 대문에 두 장씩 붙이는 요행을 부리기도 했지만, 그 경험은 어린 시절 나를 결코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꽤 괜찮은 도전으로 기억돼있다.



시간이 흘러 무럭무럭 자라 대학생이 되고부터 본격적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내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려면, 경제적 독립을 책임지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대학교 1학년은 평일 저녁에는 영어학원에서, 주말은 반나절씩 카페에서 돈을 벌며 알바몬의 삶을 살았다. 운이 좋아 돈이 없을 때면, 타이밍 좋게 일거리를 만났다. 통장잔고가 아슬아슬하게 바닥을 바라보더라도, 빵꾸 난 적은 없다. 그랬던 내가 스물아홉 4월 최대의 보릿고개를 겪게 되었다.



3월 경제활동의 대가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가 좋아하는 GS25 달걀 궁둥이 샌드위치를 이틀에 하나 꼴로 사 먹긴 했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빨리 바닥을 드러내다니. 4월 넷째 주 월요일이 되자마자 ‘밥값 줄이기’라는 단호한 문구가 당시의 내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이틀 뒤, 나는 삼촌의 제안으로 단기 알바를 하게 되었다. 역시나 이런 부분에서 늘 행운이 따르니, 내가 지금까지 굶어 죽지 않고 살아있는 거겠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비어 가는 총알을 채우기 위해, 삼촌 친구 김 감독님께 고용되어 ‘뭐든 다 한다’는 전제 아래 노동을 시작했다.



첫 번째 업무 운전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방치해둔 서류 정리하기, 욕실 천장 도배, 주방 타일 붙이기와 같은 다양한 일거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와우. 나름대로 연극을 하면서 페인트칠도 해보고, 못질도 해봤다. 이 정도야 거뜬하게 할 수 있지. 봄볕이 등줄기를 뜨겁게 데우는 육체노동을 하다 보니, 면접 결과를 기다리느라 떨리고 요동치는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연극에 빠진 뒤로는 돈이 필요해도 가능하면 연극과 연결지을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내가 하는 일에 이유가 늘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난 연극을 하고 싶으니까 연극과 관련된 일만 찾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오랜만에 연극이라는 목적성을 잠시 내려둔 노동을 했다. 처음에는 묘한 공허함이 내 주위를 맴도는 듯했지만,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하자 소리 없이 사라졌다. 정말 순수한 노동의 시간을 가졌다. 내 몸을 정직하게 움직여 어떤 일을 할 수 있었고, 일에 대한 대가를 받았다. 연극을 할 때 왕성하게 활동하는 잘하고 싶은 욕심, 불안감, 기대와 스트레스를 느끼는 감정 세포에게 달콤한 휴식을 주었다.



뭐든 다 하는 심부름센터의 노동자로 지내며, 정말 불안하게 보냈을 시기를 마음 편하게 살았다.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충실하게 흘려보냈다. 날 누르는 강박에서 벗어나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열심히 섞었던 시멘트 반죽, 나름대로는 미학적으로 붙인 주방 타일, 그 시간을 함께한 노동요들.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미지를 회상하다 보니, 때론 그런 시간도 의미 있단 생각이 든다. 모든 일에 다 목적을 두지 않아도 잘못된 건 없었다.



서류 결과가 발표 날 때까지 일주일쯤 뭐든 다 하는 단기 알바를 했다. 어쩌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규칙적인 노동과 휴식으로 삶의 균형을 잡았던 날들이었다. 충전된 총알과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다음 전투를 준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