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_두 사람의 시간
두 남녀가 있었다. 한 사람은 내 오른쪽 앞에 앉아 생선살을 바르고, 다른 한 사람은 왼쪽 앞에 앉아 장아찌를 올린 밥숟가락을 입으로 넣고 있었다. 둘 사이엔 어떤 구체적인 대화는 흐르지 않았다. 숟가락이 밥그릇 안을 타닥타닥 긁는 소리, 젓가락이 반찬통 모서리에 톡톡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두 사람을 지켜보는 내 숨소리만 배경음악처럼 존재했다. 어쩌다 머무른 시선은 숟가락과 젓가락이 미묘하게 만들어내는 리듬 속으로 깊게 빠져들었다. 지금까지 저들은 얼마나 많은 곡을 함께 연주했을까? 미완성으로 버려진 곡도 있겠지? 존경스러웠다. 부럽기도 하고.
내 연애가 처음으로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었던 때에, 식사를 하시는 부모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 적이 있었다. 공간을 채우는 말소리도 없고, 서로 손이 가는 반찬도 달랐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한결같이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같은 방향을 보며 밥을 먹었다. 문득, 내겐 너무 익숙한 풍경이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고 느껴졌다. 한 사람과 일 년을 보내는 중에도 변덕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는데, 25년간 지속시켜온 두 사람의 시간은 얼마나 멋진가. 흘러들어온 존경심은 단단하게 자리를 채웠다. 나는 언젠가 두 사람에게 리마인드 웨딩을 꼭 선물하고 싶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서야, 그 결심을 실행할 수 있었다. 대학시절 운 좋게 실천할 수 있었던 경제적 독립은 대학원생이 되자 애매한 기로에 놓였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학원행은 나의 경제적 성장세를 더디게 만들었다. 서울은 나 하나 간사하기에도 빠듯한 도시였다. 또래 친구들처럼 월급이 들어오는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용돈 봉투 한 번을 제대로 내밀어 본 적이 없었다. 오랜만에 울산 집을 방문할 때면, 출근하는 부모님께 괜스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편지만 한 통 남겨놓고 다시 올라올 뿐이었다. 불편한 마음은 ‘그래도 넌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라는 말에 막혔다. 죄송한 마음을 숨기려면, 부모님을 잘 만났다고 포장하는 수밖에. 덕분에 능글거림과 애교만 늘었다.
얼떨결에 ‘리마인드 웨딩, 가족사진 이벤트’에 당첨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지우지 못한 버킷리스트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비록 순수한 내 능력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찾아온 운으로 찍게 된 사진이지만, 오랜만에 효도 비슷한 걸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붕 떠버렸다. 설레는 마음으로 촬영날짜까지 매일 밤마다 사진 촬영 컨셉을 리서치했다. 한 번 입고 잠옷이 될 것도 모른 체, 가족티에 넣을 문구도 오랫동안 고민했다. 게다가 오월은 가족의 달 아닌가.
5년 전 그 날의 식사시간, 두 사람의 어깨너머 찻장 속에는 25년 전 부부가 된 결혼식 사진이 놓여있었다. 나와 동생이 태어나기 전, 가족이라는 시작을 앞둔 남녀는 앳된 얼굴과 진지한 표정으로 결혼생활을 출발하였다. 아직까진 뽀시래기 사랑밖에 안 해봐서 그들은 서로 주고받은 감정에 얼마나 확신을 가졌는지. 믿음을 바탕으로 흘렀을 시간의 무게와 깊이는 가늠이 안 된다. 다만, 잠이 덜 깬 눈을 끔뻑이며 방문을 열고 나오면, 언제든지 볼 수 있었던 평범한 일상이 결코 쉽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잘 알겠다.
30년 만에 엄마 아빠에게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히게 되었다. 이벤트 당첨 소식을 전한 이후로는 전화기 너머 울산에서 들리는 목소리에도 기대가 서려있었다. 전해지는 서브텍스트에 나도 기분이 좋아져서 스물아홉이 100일쯤 지나가버린 것도 모른 체, 행복한 5월을 시작했다. 인생은 새옹지마라 어떤 사건이 내 행복을 순식간에 납치해버릴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다이어리에는 즐거운 일을 기다리는 동안의 기쁨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