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_포즈왕
아빠와 나 사이가 변하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전과가 중학교 문제지로 바뀌었을 때부터가 아닐까 짐작한다. 꽤 오랜 시간 우리의 유대관계는 모르는 문제를 묻고 가르쳐주는 방식으로 건강함을 유지하였다. 그가 생각하는 딸을 사랑하는 방법도 그랬을지는 모르겠지만, 딸은 아는 문제도 굳이 한 번 더 질문하며 아빠의 사랑을 느끼곤 했다. 게다가 그는 여고에서 꽤 인기 있는 선생님이었다. 당직을 서는 주말이면 나랑 동생을 학교에 데리고 갔다. 학교에서 우연찮게 아빠의 제자를 만나면 다들 하나같이 호들갑을 떨며, ‘네가 박열 선생님 딸이야? 좋겠다 선생님 너무 멋지지 않니!’를 연발하였다. 대외적 모습과 집에서의 모습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누군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딸이라는 건 내가 선택할 수 없는 행운이니까.
아빠의 퇴근시간을 기다리면서 문제지를 풀고 있었다. 답지를 봐도 모르겠는 문제, 해설을 보고 이해했지만 그래도 물어보고 싶으니까, 너무 쉽게 풀렸지만 뭔가 어려워 보여서 질문하기 좋은 것을 추려내다 보니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의 숨 돌리기를 지켜보면서 질문할 타이밍을 찾았다. 슬금슬금 다가가 문제지를 내밀었다. 잠시 후, 나는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중학교 과정을 모를 리가 없다. 아니 그럴 수도 있나? 처음으로 아빠에 대한 미해결 과제가 수면 위로 떠 올랐다. 방문으로 닫고 스탠드 불 하나만 킨 채, 책상에 꼼짝 않고 앉아서 생각했다. 그리고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다. 아빠도 인생에서 아빠가 처음이라 서투를 수 있는 게 아닐까. 어린 시절 내 우주의 전부였던 아빠는 그날을 기점으로 나와 똑같은 사람이 되었다. 이후 우리는 영어단어를 제대로 외웠는지 확인하거나, 쪽지시험을 내고 풀고 채점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채웠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대화가 끊어졌다.
서울에 오고 난 뒤, 이틀에 한 번 꼴로 엄마와 통화를 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빠의 안부를 알 수 있었고, 아빠도 내 소식을 전해 들었겠지.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인 침묵을 택했다. 서로의 마음속 한 구석에 장기 숙박객이 되어 상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리마인드 웨딩 촬영 당일, 우리 가족은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사진관으로 향했다. 서울과 울산에 떨어져 사는 가족의 만남은 매번 이벤트가 되기는 하지만, 그날은 더 특별했다. 사진관으로 들어서자 엄마와 아빠는 30년 만에 신랑과 신부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여럿 중년 부부를 과거로 회귀시켰던 사진작가님은 능수능란하게 엄마 아빠를 30년 전으로 돌려보냈다. 나와 동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 그들의 출발을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등장한 엄마와 아빠는 비장하고 진지했던 과거와 달리 여유와 미소가 넘쳤다. 그 분위기가 너무 예뻐서 겁도 없이, 내 시간도 훌쩍 저렇게 흘러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뻔했다. 우린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서른을 앞둔 나만 하루하루가 불안한 것 같아 조금 억울했다.
작가님의 요청에 따라 엄마 아빠는 포즈를 취했다. 동생과 나는 신랑 신부의 들러리가 되어 곳곳에 배치가 되었다. 촬영 시간이 길어지자, 엄마는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카메라 안과 밖의 미소에 간극이 생겼다. 하지만, 아빠는 달랐다. 웨딩 촬영이 끝나고, 7080 컨셉으로 아빠에게 교복과 모자, 가방이 주어졌다. 아빠는 한순간에 양아치가 되었다. 그의 표정과 포즈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정말로 그런 학창 시절을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함이 밀려왔다. 양아치가 공부까지 잘하면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마어마한 '포즈왕'이었다. 그에게 엄청난 표현 기질이 꽁꽁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경악했다. 아무리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날이라지만, 이번만큼 아빠가 낯설기는 처음이었다. 우리가 오 년 넘게 대화를 덜하고 살기는 했다만, 아빠와 살았던 25년은 무엇이란 말인가. 만약 그가 연기자가 됐다면 대한민국을 이끄는 꽃중년 배우가 되었으리라.
가끔 유전학 적 관점에서 나의 전공을 생각할 때면 아무리 고민해도 엄마 아빠의 어떠한 특징을 내가 물려받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맥락에서 미해결 과제가 풀렸다. 그의 표현 욕구가 나에게 흘러와 예술적 욕망으로 성장한 것이다. 나는 큰 성공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저런 아빠가 나은 딸이라면, 소소한 성공을 줄줄이 꿰어맨 예술가가 되지 않을까? 내심 불안했던 내 예술성에 대한 묘한 자신감이 생겼다.
함께한 시간에 속아 아빠의 특별한 능력을 오랫동안 몰랐다. 오래전 같이 문제를 풀던 그 날처럼, 역동적인 포즈와 생동감 넘치는 표정이 닮은 부녀가 되어 사진 속에 남았다. 아직까지 우리 사이에 간접적인 침묵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나의 존재감이 그에게서 온 것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