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월 - 오월은 가족의 달.

15 _ 리마인드 웨딩은 아름다울 줄만 알았다.

by 예슬


<리마인드 웨딩은 아름다울 줄만 알았다.>



‘새옹지마’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다. 장원한자를 그만 둔지 20년이 다 돼 가도록 머릿속에 남아있는 걸 보니, 사자성어와 얽혀있는 유래 속 노인의 초연한 태도가 꽤 인상 깊었나 보다. 가끔씩은 ‘새옹지마’ 말고, ‘세옹지마’가 더 그럴듯해 보여서 일부러 오타를 만들기도 했다. 기대도 잘하고 실망도 잘하는 나는 끓어오를 때마다 새옹지마를 가슴에 되새기며 마음을 다스린다.



두 시간 동안 다섯 벌의 의상을 체인지하며 진행된 촬영이 무사히 종료되었다. 생각보다 꽉꽉 짜인 무료 이벤트 스케줄에 돈 안내는 행운이 죄송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재킷만 바꿔 입으면 확확 바뀌는 아빠와 달리, 엄마는 의상 도우미 선생님까지 따로 붙어 꽤 고생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높은 굽을 신어 허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무료’이기 때문에, 카메라 안에서는 끝까지 미션을 수행하셨다. 사진 촬영이 끝나고 우리는 인화할 사진을 선택했다. 우리가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사진은 8절 크기의 액자 한 장이였다.



이벤트 안내문에서 무료 항목에 대한 부분을 미리 확인했었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준비하는 동안 작가님께 8절 사이즈를 추가금액을 내고 키울 수 있는지, 촬영 파일은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봤었다. 긍정의 대답을 받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는데, 알고 보니 원본 파일은 다 받을 수 없으며, 작가가 선택하고 보정한 추가 사진은 50만 원짜리 앨범을 구매해야만 받을 수 있었다. 앨범 구매에 대한 부분은 쏙 빼놓고 파일을 받을 수 있다고만 말씀하신 거였다.



이벤트에 당첨된 행복은 언제든지 호구 고객 레벨 상승으로 바뀔 수 있었다. 나는 호구가 되었다. 새옹지마가 필요한 순간이다. 마치 인도영화 세 얼간이의 ‘알이즈 웰’처럼, 나에게도 ‘새옹지마’가 필요했다. ‘새옹지마, 세옹지마, 새옹지마, 세옹지마...’



상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추가 앨범을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시간을 이렇게 사라지게 할 수는 없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제 돈 내고 당당하게 처음부터 컨셉 미팅도 깐깐하게 하고 엄마가 힘들 때는 쉬어가면서 촬영했을 것이다. 정말 인생 호구가 된 느낌이었다. 간간히 휴대폰으로 찍어둔 사진에 그날의 분위기가 얼핏 드러나 있긴 했지만, 두 시간 동안 고생하신 부모님의 노고를 담아내지는 못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앨범을 구매했다. 리마인드 웨딩은 아름다울 줄 만 알았다.



엄마는 사기당했다며 꾹꾹 참아온 불편함을 터뜨리기 시작하셨고, 아빠는 작가님과 딜을 하기 시작하셨다. 이벤트에 당첨된 나는 영혼이 나갔고, 동생은 휴대폰으로 더 많은 사진을 찍어야 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나는 호구다. 새옹지마, 세옹지마, 새옹지마, 세옹지마.


사진사 아저씨가 없어도 찍을 수 있는 가족사진

사진관을 나오고 나는 자진해서 하루 종일 가족들의 샌드백이 되었다. 묵묵하게 엄마의 불평을 들으며, ‘내가 잘못했지. 미안해. 앞으로 이벤트는 절 때 신청하지 않을게.’라는 말을 무한 반복했다. 나중엔 엄마가 무슨 말만 시작하면 자동 반사처럼 저 말이 나왔다.


풀 죽은 나를 보다 못한 동생의 제안으로 우리는 가족티를 입고 남은 하루를 보냈다. 내가 고심해서 제작한 가족티에는 ‘#엄마 #왕년에꽃미녀출신 #우리집비선실세 #8남매중얼굴도안본다는셋째딸’ 같은 문구가 프린트돼있다. 사진만 찍고 잠옷으로 전락하기엔 투자한 시간과 비용이 아까웠단 말이다. 결국엔 바다를 배경으로 셀프 스냅사진도 찍었다. 지나가는 분들이 멋지다며 인사를 하기도 하셨고, 무슨 프로그램을 촬영 중인 건지, 티는 어디서 만들었냐고 질문을 하기도 하셨다. 부끄러우면서도 특별한 시선을 받으니, 아쉬움과 억울함이 조금씩 풀려갔다. 저녁쯤에는 엄마의 기분도 어느 정도 풀려서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하셨다. 매사 나한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화내지 말라고 하면서 저날 만큼은 말과 행동이 다른 엄마였다.



스물아홉 5월, 잊지 못할 호구가 되었다. 가족을 매우 사랑한 호구가 어쩔 수 없이 상술에 넘어가 준 거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그날의 분위기를 생각해본다면 그건 한 일 년쯤 지난 술자리에서 꺼내야 할 것 같았다. 놀이동산에서 타는 롤러코스터보다 더 오르락내리락 희로애락이 있는 리마인드 웨딩 이벤트였다. 엄마는 한 동안 통화를 할 때면,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으셨다.



그래도 서른이 되기 전에, 세상의 중요한 이치.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사실을 격하게 깨달아서 다행이다. 연극보다 더 연극적인 사건을 경험했으니, 잘 써두고 다음에 써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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