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_ 세상에서 가장 큰 옷장
스물아홉 3월까지만 해도 내 인생에 연극이 아닌 다른 일이 들어올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지나가는 말로 연극을 지속하기 위해서, 집 근처 스몰비어를 인수해볼까 말하긴 했었다. 하지만, 인생의 흐름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의 연속이었던 4월을 기점으로 나는 맥주집 대신 첫 회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행히 고심해서 썼던 자기소개서가 1차 관문을 통과하고, 2차 현장방문과 3차 면접의 기회를 앞두게 되었다. 한창 취업준비의 막바지를 달리던 남자 친구에게 ‘면접은 대화’라는 명언을 가르침 받고, 이것저것 속성으로 준비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취준을 3년 동안 지켜본 보람이 있었다. 오후의 볕이 따사롭던 어느 봄날, 무사히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일하게 된 회사는 취업준비생에게 사회 선배들이 기증한 정장을 대여해주는 ‘열린옷장’이라는 비영리 단체였다.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어서, 면접정장을 빌리는 남자 친구를 따라 몇 번 가본 적이 있었다. 처음 방문한 날, 대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공간 한쪽에 비치된 ‘나의 정장 이야기’라는 책자를 읽었다. 연극을 전공하며 스토리를 다루는 공부 중인 나에게 사회 선배들의 옷장에 잠자는 정장을 기증받아, 후배들이 대여하는 이야기는 꽤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정장 이야기에 담긴 다양한 에피소드 중 몇 개는 내 마음을 똑똑 두드렸다. 문 열어주는 거야 어렵지 않다. 열린옷장은 틈새가 열리자마자 쏙 들어와 기억 한 곳에 인상 깊게 남았다. 이야기가 있는 세상에서 제일 큰 옷장과의 첫 만남은 생각지도 못한 두 번째 만남을 이끌어내었고, 나는 열린옷장의 ‘옷장지기’가 되었다.
열린옷장의 업무는 크게 정장을 대여하는 고객응대와 기증, 반납된 정장과 이야기 관리로 나뉜다. 단순하게 보이는 일들 속에 강한 육체노동이 있었지만, 오랜 기간 연극으로 밝은 에너지와 정신력을 다져왔기에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업무에 적응할 수 있었다. 면접을 앞둔 취업준비생뿐만 아니라, 결혼식, 장례식, 졸업식, 상견례, 소개팅과 같은 다양한 사유로 정장을 대여하는 고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울리는 정장을 찾아드리는 것은 꽤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한 번은 아빠뻘의 선생님께서 조카 결혼식을 위해서 정장 대여를 하러 오셨는데, 젊어 보이고 싶다는 그분께 나는 회색 스트라이프 정장과 와인색 넥타이를 골라드렸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몇 번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자신감을 한껏 북돋아드리니 결국엔 그 정장을 대여하셨다. 반납을 하시면서 나의 정장 이야기를 함께 남겨주셨는데, 그 안에 나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몇 자 안 되는 글귀가 주는 보람이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크게 다가와서 깜짝 놀랐다. ‘정장’의 특성상, 입는 순간 그 사람의 일상에 잠시 특별한 이야기가 생긴다. 나는 그 이야기 시작을 도와주는 존재로 비하인드 영상에 살짝 출연하고 있었다.
연극이 아닌 새로운 일을 하면서, 나는 몰랐던 내 모습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서비스직에 잘 맞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셔츠를 다리면 정신이 맑아지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연극을 할 때도 가지고 있었던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것도 발견했다. 면접 때문에 대여를 하시는 분께 오글거리는 파이팅을 민망해하지 않고 잘 말했고, 살짝 과장된 리액션으로 대여자와 어색하지 않게 이야기를 나눴다. 분명 대외적인 낯가림이 심한 편인데 내게 깔린 멍석 위를 잘 뛰어다녔다.
물론, 연극을 하고 있지 않다는 찝찝한 감정이 뱃속 어딘가에 꿈틀거리고 있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꼬박꼬박 월급이 통장에 찍히는 삶을 처음 살아봐서 내 뱃속까지 돌아볼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처음으로 부모님께 편지만 달랑 넣어져 있지 않은 용돈 봉투를 드렸다. 언제 또 드릴지 모른다는 불안정함이 묻어있었지만, 그래도 이십 대가 지나가기 전에 용돈을 건네는 딸이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불규칙적인 내 삶에 안정적인 생활리듬을 들어왔다. 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휴식을 취하며 큰 걱정거리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6월의 어떤 하루는 침대에 누워 남자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연극을 하고 있지 않은 것만 빼면, 지금이 너무 행복해서 이 모든 게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휴대폰 넘어 그 친구의 귓가에만 보낸 줄 알았는데, 방금 글 쓰면서 침대를 바라보니 행복함에 내뱉었던 말이 고스란히 이부자리에 남아있었다.
스물아홉의 한 가운데, 평일에는 세상에서 제일 큰 옷장의 문을 열며 열심히 일을 하고 맞이하는 주말마다 정말 잘 쉬었다. 월급턱도 내고 열심히 노느라 포동포동 살이 올랐지만, 유독 사진첩에 예쁜 사진이 많은 유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