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월 - 스물아홉의 한가운데.

17 _ 막내 삼촌과 줄줄이 소시지들

by 예슬


<막내 삼촌과 줄줄이 소시지들>



동생의 군 전역을 앞두고, 소소한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할머니와 셋이서 베트남을 가려고 했지만, 제주도에 어떤 이름 모를 점쟁이가 할머니에게 2018년에 비행기를 타고 섬을 나가면 큰일이 일어날 거라고 말하는 바람에 그녀는 섬을 떠나지 못했다. 하지만, 베트남 여행이 계획되었던 시기에 할머니는 허리 수술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나왔으나 아무 일도 없었다. 신내림 기운이 증발한 점쟁이의 발언으로 효도여행이 무산되고, 동생은 전역 후의 자유로운 일상을 특별하게 보낼 수 없음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날이 갈수록 찌뿌둥 해지는 신체의 변화를 견디다 못한 막내 삼촌의 제안으로 우리는 일본으로 온천여행을 계획했다. 여기에 서울에 살고 있는 사촌오빠와 사촌동생이 합류해 막내 삼촌과 조카들이 줄줄이 소시지가 되어 가고시마로 떠났다.



각자 삶을 살아내기에 바빴던 우리는 명절을 제외하면 거의 볼 일이 없었다. 서류상으로는 가족, 혹은 친척이라 불리는 꽤 가까운 사이지만, 정작 만나면 안부인사만 주고받아도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어릴 땐 꽤 친했던 것 같은데, 우리의 끈끈함은 훌쩍 지나간 시간 속에 말라버렸다. 사실, 친척이라는 것이 어쩔 땐 팔이 안으로 굽는 가족이면서, 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하는 미묘한 관계다. 하지만, 서로의 일상이 아닌 특별한 곳에서의 2박 3일을 공유한다면 잃어버린 유대감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같은 피가 흐르지만 다른 시간을 공유해왔던 줄줄이 소시지들은 공항에서부터 갈등을 시작했다. 약속한 시간은 같았지만 각기 다른 시간에 도착하며 다사다난한 여행의 복선을 깔았다. 여행 계획을 짜는 것부터, 숙소의 형태, 저녁 메뉴까지 어느 하나 쉽게 결정되는 것이 없었다. 아싸리 처음부터 남이라면 배려와 이해가 조금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싸우자니 피곤하고, 따르자니 양보하기 싫은 그 마음이 참 어려웠다. 우린 가족이라는 이름이 주는 친밀함에 속아 서로가 당연히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와 실망을 반복했다. 나조차도 스물아홉이라 어른스럽게 굴어야지 생각하면서도, 대외적으론 더 이상 표출할 수 없는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다행히, 어렵게 결정한 라멘과 초밥은 다 맛있었고, 료칸이 딸린 숙소도 만족스러웠다. 시도 때도 없이 찍어둔 사진 속에 남아있는 표정들은 죄다 웃고 있다. 여행이 끝나고, 이주쯤 지나서 올린 SNS에 ‘#색다른가족여행’이라고 태그를 달아둔걸 보니 결과적으로 관계의 돈독함은 챙긴 것 같다. 글을 쓰다말고 카톡을 쭉 내려다보았다. 한참을 내려서야 보이는 삼촌과 사촌오빠의 이름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사전에 정의되어 있는 관계가 되도록 나조차 지금껏 노력하지 않았으면서, 내 생각과 다른 모습에 실망하고 버거워했을지도 모른다고. 심지어 사촌오빠에겐 새해 인사도 하지 않았구나. 나는 스스로 직접 선택하지 못한 관계가 주는 책임감을 마냥 회피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가족은 소중하다. 1년에 두세 번 밖에 못 보더라도 만나고 오면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기운을 만들어준다. 내 마음이 부족해도 이름으로 결합되어 있는 관계는 태어나자마자 대가 없이 받은 선물이다. 때로는 타인에게 기대할 수 있는 환상을 가질 수 없어 비극적으로 휘어질 수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보다 조금만 노력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이미 우리는 시작부터 줄줄이 소시지처럼 연결되어있어 마음만 채워 넣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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