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dia - 어른
많은 음악을 자주 듣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 번 귓가에 맴돌아버린 음악은 계속해서 찾아 듣는 경향이 있어요.
제 플레이리스트에는 오래도록 머물러있는 음악들이 있네요.
제가 그냥 흘려보내는 순간들을 대신, 기억해주는.
그래서 음악을 들으면, 다시 그 순간을 찾아내 주는.
시간이 되어 함께 흘러가버린 순간들을 기록하고 회고하며
당신의 순간도 꺼내고 싶게 만드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직접 경험해보기 전까진 글을 쓰는 것과 책을 만드는 일이 같은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책 만들기야, 내가 쓴 글을 모아서 편집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달랐다. 3주가량 글쓰기를 중단할 만큼 에너지를 쏟고 나니, 깨달았다. 내 긍정적인 추진력에 또 뒤통수를 한 대 맞았구나. 체력을 생각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시도하는 무모함에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비타민 한 알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어 삼켰다.
이 정도로 기가 빨릴 줄이야. 글쓰기는 시간을 투자한 만큼, 한 편씩 완성되는 기록이 눈에 바로 보였다. 'writing' 폴더에 차곡차곡 쌓이는 글이 주는 성취감에 홀려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는 말에 나 자신을 퐁당 내던질 수 있었다. 그렇게 꿀잠을 자고 나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장기 속에 가득가득 채워져 이런저런 약속들을 다 오케이 했다. 그리고 닥친 현실에 오케이 걸은 흐느적흐느적 거리며 약속을 소화했다.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눈가에 맺힌 빨간 실핏줄은 타인의 입에서 ‘예슬씨, 많이 피곤하죠?’라는 말을 연거푸 재생시켰다. 이런.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가면은 빨개진 토끼 눈알까지는 숨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망했다.
책을 만드는 일은 0.1mm의 차이를 느껴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었다. 매사 많은 고민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 전체적인 컨셉을 잡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가독성이 좋은 서체, 자간과 줄 간격, 제목 위치와 같은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내지 편집과 오타 체크는 아무리 시간을 투자해도 채울 수 없는 구멍을 가지고 있었다. 가제본을 뽑고 나면 또 발견되는 오타에 꼼꼼하지 못한 내 성격을 얼마나 탓했는지, 신발장 앞에 놓인 재활용 쓰레기봉투에 맥주 캔과 탄산수 병이 하나둘씩 쌓여갔다. 퍼블리셔나 인디자인을 다루지 못해, 한글로 끙끙대며 편집하는 나와 부산대 맞춤법 검사기는 며칠 동안 하얀 새벽을 함께 맞이했다. 거기서 거기인, 크게 달라지지 않는 편집디자인과 사투하느라 한 동안 글쓰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강박에 빠져서 잠자리에 불안함이 따라 올라왔다.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
난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아플 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주의 과정을 거쳐 거실 한 구석에 완성본이 200권 담긴 상자가 들어왔다. 한 동안 휴대폰 너머로 대책 없이 책을 200권이나 뽑았다며 팔리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냐는 엄마의 걱정스러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안 그래도 좁은 내 자취방에 자리를 차지하는 인테리어 소품이나 냄비받침이 될까 불안해하는 것 같았지만, 설령 먼 미래에 내 책이 누군가의 라면 냄비 아래 놓인다고 해도 현재의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더불어 한 권 한 권 포장지에 넣고 입고 준비를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내 곁에서 오래도록 머물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랬다. 그래서 포장을 도와주겠다는 동생의 제안도 정중하게 거절한 채, 혼자서 박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내 책을 구매해줄 미래의 독자를 위해 한 장 한 장 편지를 쓰며 정성을 들였다.
눈을 감아 보면
내게 보이는 내 모습
지치지 말고
잠시 멈추라고
연극을 할 때와 달리 나 혼자서 모든 과정을 진행하고 책임지는 독립출판은 사람에 치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한 다는 주변의 시선에 지쳐버린 내 감정을 조금씩 어루만져주었다. 스물아홉과 서른의 사이에서 배회하는 나를 멈춰 세우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는 책 편집과 유통 판매라는 새로운 도전과제를 만나자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모르는 미궁으로 빠지긴 했다. 하지만, 집구석 곳곳에 자리 잡은 내 책에 우연히 시선이 닿을 때면, 흘러가버린 시간 속에서 낚아챈 내 감정과 기억이 떠오른다.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책 속에 들어있는 문장과 만난다. 혼자서만 느낄 수 있는 작은 미소와 함께 나는 이젠 어른이 되어야 할 나 자신을 다독인다.
어떤 날 어떤 시간 어떤 곳에서
나의 작은 세상은 웃어줄까.
Sondia <어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