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벚꽃만 즐기려고 했는데'

버스커 버스커 - 벚꽃엔딩, 꽃송이가

by 예슬

많은 음악을 자주 듣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 번 귓가에 맴돌아버린 음악은 계속해서 찾아 듣는 경향이 있어요.


제 플레이리스트에는 오래도록 머물러있는 음악들이 있네요.


제가 그냥 흘려보내는 순간들을 대신, 기억해주는.

그래서 음악을 들으면, 다시 그 순간을 찾아내 주는.

시간이 되어 함께 흘러가버린 순간들을 기록하고 회고하며

당신의 순간도 꺼내고 싶게 만드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집 근처 덕화 맨션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벚꽃은 봄의 상징이 아닌가? 당연히 봄이 온 줄 알고 겨우내 입었던 코트를 세탁소에 맡겼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예상치 못한 추위에 파르르 떨며 세탁소 앞을 지나갔다. 이렇게 봄맞이할 때면, 꼭 한 번씩 날씨의 농간에 놀아난다. 그런 내 모습이 바보 같다 싶다가도 분홍 팝콘처럼 피어난 꽃송이를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올해는 혹독하게 앓고 있는 서른을 위로해주려는지, 운 좋게 제주의 벚꽃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4월의 제주는 처음이었다. 봄바람 타고 흩날리는 꽃비를 맞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 줄 알았으면,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한 번은 와봤을 것이고, 남자 친구와 헤어지기 전에 두 번은 와봤을 것이고, 서른이 되기 전에 세 번은 와봤을 것이다. 하지만, 4월이 되면 핑크 섬으로 변하는 모습을 몰랐기에 한 번도 와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버스커 버스커 <벚꽃엔딩> 중



내 앞머리에 대롱대롱 달린 꽃잎 한 장, 신발 끝에 붙어버린 꽃잎 두 장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몇 번이나 누르고서야,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눈이 아닌 다른 곳에 담으려는 마음이 욕심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서른이 돼서야 뒤늦게 알게 된 제주의 분홍빛 꽃송이가 주는 여운을 그대로 느끼려, 눈을 감았다.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래그래 피었네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 꽃 한 송이가 그래그래 피었구나



귀에 이어폰을 꽂지 않아도 음악이 들릴 만큼, 봄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앞다투어 귓가를 장악하는 두 노래가 무념무상의 봄맞이를 깨고, 생각의 물꼬를 텄다. 문제의 두 곡은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엔딩’과 ‘꽃송이가’였다. 그중 ‘벚꽃엔딩’은 ‘버스커 버스커’ 1집 타이틀곡으로 벚꽃 연금이라는 애칭이 있을 만큼 정말 인기가 많았다. 그에 비교하면, ‘꽃송이가’는 상대적으로 마이너적인 성향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그런데, 나는 ‘꽃송이가’가 더 좋았다. 왜일까?



벚꽃 놀이하던 중 어쩌다 이런 물음에 빠졌는지 알 수 없지만, 상념은 인식하기도 전에 자기 혼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만치 전개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나는 그저 당했다. 난 비주류적인 성향이 강한 인간일까? 아니면, 주목받으면 부끄러움에 볼이 빨개지지만, 조용히 있으면 입이 근질거리는 모순적인 마음의 화살표가 1등이 아닌, 2등으로 향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거리에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 그 길에 사람들
그래 나는 네게 얼마만큼 특별한 건지
그게 어려운 거야 그게 어려운 거라 그게 어려운 거야


버스커 버스커 <꽃송이가> 중



또 어쩌면, 많은 사람은 부담스럽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이 ‘꽃송이가’를 찾은 게 아닐까? 속 시원한 결론은 모르겠다. 비주류 성향, 모순적인 마음, 특별해지고 싶은 욕심 그 모든 것이 다 버무려졌겠지.



결국엔 ‘꽃송이가’를 무한 반복으로 들으며 꽃놀이를 마무리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혼자 즐겼던 터라 마지막에 잠깐, 내가 이 거리를 같이 걸을 사람이 없어서 벚꽃엔딩을 선택하지 않은 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벚꽃 하나에 많은 생각이 터졌다. 서른은 원래 이런 걸까? 머릿속이 두툼해지는 나를 만나는 것이 아직까진 조금 버겁지만, 세탁소에 맡긴 코트 없이도 따뜻하게 즐길 수 있었던 서른의 벚꽃이라 결론은 ‘참, 행복하다’라고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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