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일으키는 너

Brain Crain - Butterfly Waltz

by 예슬

아침 일곱 시에 눈을 떴다. 사실, 눈꺼풀에 힘을 주고 들어 올리는 것은 괴로웠다. 하지만, 잠은 이미 깨졌다. 정신이 말똥말똥하고 몸은 피곤한 각성상태. 요즘 내 기분이 그렇다. 전날 아무리 늦게 잠들어도 다음 날 아침은 이 시간이다. 익숙해진 피곤함은 핸드폰을 먼저 찾는다. 잠결에 끊어진 카톡을 훑어보며, 누구와 내 하루를 다시 이어볼까 고민했다. 그리고 네 이름에 눈동자가 멈췄다. 동시에 음악 하나가 떠올랐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나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는 길에 그어진 선율.



내 들숨에 십 이년 전, 그 날의 공기가 콧속으로 섞여 들어왔다. 다시 감긴 눈꺼풀 앞으로 피아노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는 너와 나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귓가에 맴도는 희미한 건반 소리. 난 참지 못하고 플레이리스트를 뒤적였다. 먼지가 쌓일 만큼 오래된 추억이라 한참 동안 제목을 생각했다. 흥얼거리는 멜로디만 입가에 잔뜩 묻혀놓고 잠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그리고 끝내 기억나지 않는 노래 제목을 너에게 묻는 것으로 아침 인사를 대신했다.



열일곱, 나는 첫사랑에 빠졌다. 그의 취미는 피아노 치기. 덕분에 나 또한 피아노를 치게 되었다. 그런 나를 응원해주겠다며, 너도 내 옆에서 앉아 건반을 같이 눌렀던 시간이 있었다. 곡 하나를 제대로 외워 멋지게 선보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열심히 연습했던 날들, 오늘 아침 떠오른 장면도 그중 하나였다.



Brain Crain - Butterfly Waltz



핸드폰 화면으로 너의 답장이 올라왔다. 어떻게 ‘빠라밤 빠라밤 빰빠라 바라 밤’을 보고 제목을 말하는 걸까? 추억에 절인 시간이 꽤 길어서 내 입가뿐만 아니라, 네 입가에도 멜로디가 흠뻑 묻어있나 보다. 어쩌면 너는 이 노래 제목뿐만 아니라, 내 첫사랑 이름도 기억할지 모른다. 또 내 첫사랑이 실패로 끝났다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을 앓았던 숱한 시간도 기억할지 모른다. 넌 첫사랑에 빠진 내 손가락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는 초여름의 공기를 함께 마셨으니까. 문득 너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내 지난날들이 궁금해졌다. 한때 나에게 무엇보다 소중했지만, 그 당시 나를 덮치는 감정에 힘겨워 저기 마음 아래 어딘가 철퍼덕 던져놓은 경험들이 네 머릿속 내 폴더에는 차곡차곡 쌓여있지 않을까? 네 인생에 들어가 있는 내 인생을 듣고 싶은 아침이었다.



노래를 들었다. 금이 간 핸드폰 액정 틈새를 따라 비추는 햇살로 시선이 향했다. 겨우 뜬 눈을 다시 찡그렸다. 요즘 내 기분은 그렇지만, 첫사랑을 위해 건반을 두드리는 나와 함께 피아노를 쳐주던 네가 생각났다. 익숙해진 피곤함 속에서 떠오른 음악 하나에 너의 응원을 받아 침대에 앉았다. 어쩌면 나는 나뿐만 아니라, 너에게도 살아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더더욱 꼼지락거릴 수가 없었다. 아무리 바닥을 내리치는 아침이라도 좋은 에너지만 주고 싶은 욕심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게 나인 걸 어째. 너는 고단함이 어떻게 생겼나 눈코 입을 살펴보기도 전에 날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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