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에 들어가는 글

00. 다시 들어가는 글

by 예슬


스물아홉, 하반기가 나는 너무 어려웠다.



지난 1월, 스물아홉과 서른의 길목에서 배회하는 나 자신을 멈춰 세워보고자 글쓰기를 시작했다. 한 달 반을 꼬박 채우고서야 1월부터 6월까지의 지나간 스물아홉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3주 동안 책을 만들었다. 완성된 책을 마주하고 나면 발 디딜 곳 하나쯤은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245와 250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내 두발 사이즈가 편안하게 서있을 수 있는 곳은 여전히 미궁 속이다. 그렇지만, 깨끗이 씻은 손으로 책 커버를 쓰다듬고 포장지 속으로 넣는 일과, 집 근처 우체국에 출근도장을 찍는 발걸음은 행복하다. 맨얼굴과 화장한 얼굴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나를 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또 왔냐며 인사해주는 우체국 공무원 언니의 인사말은 매일매일 특별할 수 없는 내 하루에 작은 이벤트가 되었다. 당장 알아챌 만큼 큰 변화가 일어난 건 아니지만, 내 작은 세상은 조용히 요동치고 있다.



딱 3주간, 내가 쓴 글을 편집하는 작업을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고, 눈과 골반은 낯선 피로를 느꼈다. 모니터 화면과 사투하느라 빨개진 눈알과 매일 전방 경사 상태로 놓여서 내 허리를 세워주는 골반은 한 동안 요가를 해도 풀리지 않았다.



몸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나에게 가장 골칫거리였던 글감은 연극에 대한 내 마음이었다. ‘엉켜버린 열정’이라고 이름을 붙인 그 녀석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꽤 오랜 시간 나와 함께했기에 겨우 19편의 기록으로는 제대로 쫒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움직이는 자에게 뭐든지 따라온다고 했던가. 책 편집을 하다 뜬 눈으로 맞이한 하얀 새벽에 창문으로 느껴지는 빛의 기운에 취해 멍 때리다가, 우연히 연극을 할 때와 비슷한 감정을 낚아챘다. 눈을 감는 순간 내 가슴을 가득 채우는 찌릿함. 발톱 끝부터 갈라진 머리카락 끝을 따라 벅차오르는 이 느낌에 매료되어 연극을 했었지. 근육이 기억하는 감각을 따라가다 발견한 떨림에 나는 안도했다.



내 용기와 열정은 아직 꿈틀거리고 있었다.



완성된 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틀을 뜨거운 열과 두통과 코 막힘에 시달리며 크게 앓았다. 키보드를 치는 손등의 열기가 얼굴에 닿을 만큼, 몸이 주는 신호를 한껏 느끼고 나자 하반기를 정리할 기운이 생겼다.



스물아홉, 하반기가 나는 너무 어려웠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 삶을 제대로 책임지는 여유를 가지고 싶었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변화에 너무 쉽게 한계를 노출했다. 흔들리는 나의 파동에 영향을 받은 사람과 사건을 하나하나 만나보려 한다. 12월, 세 번째 기록에 마지막 마침표를 누르고 나면 평범한 일상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아 냉장고에서 방금 캔 맥주를 마시며 목구멍을 통과하는 탄산에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길 바라며.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는 내 스물아홉과 다시 사투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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