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_눈을 감아보면
정말 단순하게 접근하면 크리스마스이브 이브라는 내 생일이 있어서, 혹은 연말 분위기가 주는 설렘이 좋아서, 상대적으로 여름에 비해 겨울을 더 좋아한다. 그렇다 보니 눈을 질끈 감고 미간에 힘을 모아 집중하지 않으면, 여름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게 남아 뜨거운 잔향만 뿜어낸다. 구체적인 감각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다간 다시 잠들어버릴 것 같아 재빠르게 다이어리를 뒤적였다. 글씨도 더위를 먹었는지 펜 끝까지 힘을 주지 못해 끝은 다 날아다니는 꼬부랑 필체가 유난히 눈에 보이는 7월이다. 곳곳에 추임새처럼 쓰여 있는 ‘너무 덥다. 인간적으로 덥다. 너무한 거 아니냐. 수박...’이라는 문구를 보고 나니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땀을 흡수하는 유니클로 에어리즘이 생각났다. 하나하나 떠오르는 기억을 찾고 나니 지난여름이 남기고 간 뜨거움이 다시 온몸으로 느껴졌다.
연극을 시작하고부터 이십 대 대부분의 여름을 연습실이나 극장에서 보냈다. 하지만, 스물아홉 여름만큼은 예외였다. 처음 시작한 회사생활 덕분에 티셔츠 대신 카라 셔츠를 입고 단정한 여름을 보냈다. 정장의 수요에 따라 일거리가 유동적으로 변하는 내가 다녔던 회사의 특성상, 여름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도하기 좋은 계절이었다. 그에 따른 조직개편이 있었고, 정장 대여, 관리 외에 새로운 작업들이 하나둘씩 생겼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사회 선배에게 기증받은 정장을 대여해주는 업무 외에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지원하는 목적사업을 진행했다. 시각장애인 청년리더 7명을 대상으로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우리 회사는 그들의 스타일링을 지원하는 쪽으로 재능 기부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사전 준비를 위해 시각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받았다.
평소에는 아홉 시 반까지 출근하면 됐지만, 그날은 아홉 시로 출근시간이 당겨졌다.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나야 했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달리는 짧은 출근길에서, 시각장애에 대한 생각을 언제 마지막으로 해봤는지 떠올려보았다. 기껏해야 생각나는 게 오래전에 보조 출연했던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속 송혜교가 시각장애인이었다는 것이라니. 내가 가진 좁은 시야에서 부끄러움이 몰려와 뜨거워진 볼의 열기에, 안 그래도 더운 여름 아침부터 얼굴이 후끈해졌다.
내가 보는 만큼 보지 못하지만, 내가 느끼는 것보다 더 많은 걸 느끼시는 복지사님께서 교육을 진행하셨다. 내 작은 세상에 장애가 있는 사람의 등장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주제넘게 마음 한편이 찡했다. 하지만, 그는 혼자 느낀 감정에 대한 부끄러움이 오롯이 내 몫이라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본인이 가진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활용하는 당당함과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실전 적용 시간에 나는 친절하게 안내하고 싶은 마음에 배에 힘을 단단히 주고 큰 소리로 또박또박 안내를 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렇게 크게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다 들린다, 나는 눈이 안보이지 귀가 안 들리는 게 아니다’라는 유쾌한 피드백에 단전에 긴장이 다 풀려서 한 참을 웃었다.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그분의 유머에 웃다 보니 교육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내 작은 세상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이론 시간에 시각장애인에게 길 안내를 할 때는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이쪽, 저쪽’이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나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보이는 감각에 당연하게 의지하고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눈만 가리면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표현들이 내 눈꺼풀 앞에 많이도 꼭꼭 숨어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글을 쓰다 막히면, 눈부터 꼭 감아본다. 내가 무심코 흘려버린 감각이 먼 곳이 아니라, 내 눈꺼풀 앞에 맴돌고 있을 것 같아서다.
교육의 마무리 멘트는 이런 말로 끝이 났다. ‘시각장애인을 생각할 때, 시각장애인 친구가 아니라, 그냥 내 친구인데 시각장애인이다. 나와는 조금 다른 불편함이 있는, 혹은 다른 개성이 있는 친구라고 생각해보면 좋겠다’ 교육 시간 내내 부족함이 아니라, 약간의 불편함만을 보여주신 복지사님 덕분에 진심으로 와 닿았던 말이었다. 그래서 한 달 뒤 프로젝트가 실제로 진행되었을 때, 나는 내 파트너가 된 친구와 셀카를 찍으며 친해졌다.
그녀는 시야가 좁아지고 시력이 떨어지고 있지만, 꾸미기를 좋아하고 셀카 찍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평소에 셀카를 많이 찍지만, 시선처리가 힘들어서 버리는 사진이 많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시선처리를 지시해주는 일일 등대가 되기로 했다. 우리는 그 짧은 시간에 수도 없이 많은 셀카를 찍었다. 물론 등대의 어설픈 지시 때문에 그녀가 버린 셀카는 꽤 많았다. 삭제되는 사진들이 아깝기는 했지만, 나와 다른 불편함을 가진 그녀가 안타깝지는 았았다. 처음 복지사님이 내 눈 앞에 서있었을 때처럼 주제넘게 마음이 동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나와 다른 불편함이 있을 뿐이고, 그녀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스물아홉 7월, 정말 오랜만에 연극이 없는 여름을 맞이했지만, 대신 새로운 경험들과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내 작은 세상에 내재되어있던 쓸데없는 편견과 주제넘은 동정심을 인식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눈을 감아보지 않았으면, 지금도 알 수 없었을 3시간 남짓 되는 그날의 기억이 계절을 돌고 돌아 글을 쓰는 서른의 삼월까지 흘러왔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몇 번이나 눈을 감았는지 모르겠다. 중간에 몇번 잠들 뻔 했지만, 다시 잠들기 전에 글을 마무리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