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월 - 뜨거운 날씨만큼, 뜨거운

20_이열치열 점심 회식

by 예슬

'서른에 머리 박치기하는 자세 스무번째 이야기'



<이열치열 점심 회식>



예전에 어떤 연출님께서 대학 입시면접을 볼 때 ‘연극이 왜 좋은가?’라는 질문에, ‘쫑파티가 좋아서’라고 대답을 하셨다고 했다. 그 답변에 묻어난 ‘진정성’으로 합격을 할 만큼, 연극은 회식이 많다. 시파티, 쫑파티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연습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새 내 손에도 맥주잔이 쥐어져 있었다. 다른 작업보다 유독 감정교류가 도드라져서 그런 걸까? 어쩌면, 혼자서는 절대로 만들어낼 수 없는 연극 특유의 과정 때문에 술기운을 빌려 우리를 무장해제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시작할 때는 술자리에서도 어색했지만, 연습 중반이 지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러워지는 건 분명 함께 먹고 마신 밥과 술의 힘이라 생각한다. 사실 난 연습기간 동안 회식이 잦을수록, 연극이 재밌었다. 아무리 골때리는 작업이라도 같이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재밌으면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 이렇다 보니 나는 함께 먹는 시간이 주는 힘을 믿는다.



‘오늘 한 잔?’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웠던 연극과 달리, ‘열린옷장’은 함께 밥이나 술을 먹는 자리가 거의 없었다.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짝지어 밥을 먹긴 했지만, 회사 생활 두 달 반이 지나도록 모두가 함께하는 회식 자리는 단 한 번뿐이었다. 술자리 없이 업무를 한다고 해서 출근이 싫거나, 퇴근이 기다려진 건 아니다. 다만, 조금 더 동료들과 친해지고 싶은 내 마음을 표현할 핑곗거리가 없었달까. 날이 점점 더워질수록 슬라이스 레몬을 넣은 채로 냉동실에 얼렸다가 막 꺼낸 잔에 채워진 맥주의 시원함이 일하는 내내 아른거렸다. 하지만 공식적으론 낯가림이 심각한 터라, ‘오늘 한 잔?’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직접 내뱉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대표님께서 여름 비수기를 맞아 업무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를 실행하셨다. 각자 현재 업무 만족도와 건의사항,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한 의견을 구글독스를 이용하여 자유롭게 밝히는 방식이었다. 나는 다수 앞에서 내 의견을 말하는 것에 종종 부끄러움을 크게 느끼지만, 1:1이 되면 곧잘 극복하는 편이다. 착각은 자유라고 그 설문조사가 대표님과 나, 둘만의 의사소통 공간이라 생각해 회식에 대한 나의 갈증을 절절하게 풀어버렸다. 업무가 끝나는 저녁 시간이 부담스럽다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모두가 모여 점심이라도 함께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무언가를 같이 먹는 시간이 있다면 회사에 대한 소속감과 유대감이 더 돈독해지고, 서로의 업무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크게 상승할 것이라고, 회식에 대한 열망을 술술 써냈다.



알고 보니, 설문조사는 자유가 주어진 만큼, 블라인드가 아니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그 진리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망각의 동물이라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 내 의견은 출처가 분명한 공식안건이 되었다. 그리고 투표를 거쳐,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성과 공유 파티’라는 이름 아래 다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다. 비록 같은 시간에 다 함께 젓가락을 쥐고 있었지만, 한 달의 성과가 정리되어있는 모니터도 같은 공간에 있었다. 때때로 그 형식 때문에, 지금이 점심시간인지 업무의 연장선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함께 밥을 먹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하다못해 누가 중국산 김치를 안 먹는지, 노란 단무지를 싫어하는지 정도는 알게 되었으니까.



내가 퇴사를 하던 날, 대표님께서 주신 액자에는 ‘매달 둘째 주 화요일이면 생각날 것 같은...’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내심 동료들에게 한 달에 한 번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헷갈리는 시간을 만들어놓고 떠난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정작 나는 그 시간이 꽤 좋았다. 맥주잔 대신 모니터가 있었고, 해가 지고 서늘한 여름밤이 아니라 해가 쨍쨍히 떠 있는 여름 낮이었지만, 유난히 뜨거웠던 내 스물아홉 여름을 모두와 함께 이열치열 하며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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