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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른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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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Mar 02. 2024

기억을 담아두는 '찰나'

언젠간 일이 되었으면 하는 취미 '사진'

PART 1

나의 첫 기억은 엄마 손을 잡고 놀이터를 지나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엄마에게 뭐라고 꼬물꼬물 말하는 내 입 모양이 그려진다. 뭐라고 말하는진 모르겠지만, 이것저것 보고 들으며 익힌 단어를 순서 없이 나열했을 게 분명하다. 흐릿한 기억을 색칠하다 보면 나는 빨간 외투를 입고 있는데, 그 옷은 나의 애착 아우터였는지(혹은 엄마의 취향이었을지도) 귀요미 시절이 가득 담긴 앨범 속에서 자주 발견된다. 빨간 옷과 더불어 배경으로 자주 찍혀있는 그 당시 내가 살던 집에 대해서도 앨범 속 사진의 도움을 받아 조금 더 떠올려 보겠다.


군데군데 녹슬어있는 은색 철제 대문을 지나 안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면 나오는 벽돌색 단독주택 일 층. (대문 색상까지 기억에 나는 건 사실 사진 덕분은 아니고, 오랜만에 만나는 삼촌을 맞이하러 현관에서 대문까지 달려 나가다가 대문 턱에 걸려 넘어져서 맛본 인생 첫 쌍코피 덕분이다.) 주인집은 따로 있었고, 몇몇 가구와 함께 서로 다른 현관을 두고 세 들어 살았던 우리 집. 사진을 따라 기억을 더듬어 짐작해 보건대, 다섯 살 터울의 동생이 태어나 백일잔치를 할 때까지는 그 집에 쭉 살았다. 방 두 개와 좁은 거실 겸 부엌이 있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간은 햇살이 잘 들었는지 따뜻한 노오란색으로 이미지가 남아있다 .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엄마아빠와 함께 자던 큰 방과 체리 색 책장, 빨간 전기밥솥이 있었던 작은 방은 그 시절 내 사진의 주 무대다. 밥솥이 기억나는 이유는 작은 방의 한쪽 벽지는 밥솥에서 나오는 열기로 옅게 그을려있었기 때문이고, 책장이 기억나는 이유는 그 체리 색 책장이 지금도 부모님 댁 서재에서 세월을 품은 책들과 함께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또, 동생의 백일잔치 사진의 배경으로도 체리 색 책장과 빨간 밥솥이 등장한다. 그날의 스펙터클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을 들여다보니, 큼직한 리본이 달린 핑크색 공주 머리띠를 하고 노란 한복 저고리에 자주색 치마를 입은 내가 갓 백일 된 동생을 장난감처럼 마구잡이로 들어 올리고 있다. 뒤엉킨 우리가 뒤엎기 일보 직전으로 추측되는 잔칫상의 배경으로 옅게 그을린 노란 벽지와 책이 가득한 체리 색 책장이 있고, 사진의 귀퉁이는 빨간 밥솥 뚜껑도 살짝 보인다.


언제부터 내가 '생각'이란 걸 하고, '말'이라는 걸 내뱉으며 '기억'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조각조각 남아있는 어린 기억의 단상이 비교적 선명한 이유는 바로 엄마가 정성을 다해 꾸며놓은 앨범 덕분이다. 엄마는 사진 옆에 날짜와 작은 메모를 남겨두셨고, 생일이나 어린이날 같은 기념일에는 장문의 편지도 더러 써두셨다.


'이번 달에 아빠가 비염 수술을 해서, 어린이날에는 예슬이가 원하는 선물을 사주지 못할 것 같아 미안해'

'입원한 예슬이는 병원에서도 새 친구를 사귀며 잘 지낸다. 하지만 예슬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가끔 방 청소를 하다 우연히 앨범을 발견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들여다보며 생각도 안 나는 시절의 기억을 다시 채우고 차곡차곡 정리하곤 했다. 요즘도 종종 고향집에 내려가면 그 기록을 읽어보는데,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당시 엄마의 모습과 마음이 상상된다. 얼마나 나를 사랑했으면 그런 정성이 나올 수 있는지, 나는 그녀의 세상을 가득 채우는 재롱둥이였던 것이 분명하다. 지금의 나보다 서너 살쯤 어린 엄마가 꾸려놓은 사랑 속 내 어린 시절은 제법 귀엽고 상당히 해사하다.


뽀글거리는 폭탄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만두 예슬, 아빠의 등산 가방에 들어가 짐짝이 된 채로 산 정상에 올라 높은 공기를 맡는 신생아 예슬, 풍선을 넣은 게 아니라면 사람의 배라고 믿기지 않는 배볼똑이 예슬, 모르는 누군가의 품에 낯가림 없이 편안하게 안겨있는 사랑둥이 예슬까지.


이렇게 다양한 찰나가 포착된 사진으로 어린 시절을 기억해서 그런가. 난 동아리 생활을 할 때도 해마다 사진을 뽑아 일 년을 기록하는 동아리 앨범을 꾸며놓는 일에 열정을 다했다. 연애할 때도 기념일이면 추억이 담긴 사진을 인화해 앨범을 두 권씩 펼쳐두고 함께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나는 기억력과 관찰력이 꽤 좋은 편이다. 그 이유는 내가 사진을 자주 들여다보고, 그 순간을 떠올리며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행위가 습관처럼 몸에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쓰다 보니 사진을 말하는 서두가 길어졌다. 어쩔 수 없었다. 사진을 취미로 생각하다 보니, 찍는 행위뿐만 아니라 '사진' 그 자체를 좋아하는 내 모습이 너무 많이 떠오른걸. 어린 시절 엄마가 만들어준 앨범, 그 앨범 속 사진을 위해 카메라 셔터를 수없이 눌렀을 아빠로부터 시작한 나의 사진 이야기. 꾸럭미가 넘치던 꼬마는 어느덧 사진 찍는 것과 찍히는 것을 둘 다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다. 핸드폰 사진첩이 꽉 찬 덕분에 저장공간을 추가 구매하라는 메시지를 자주 만나 추가결제를 할지 말지 자주 고민하고, 언제부턴가 친구들과 떠난 여행에서 삼각대를 들고 두리번두리번 포토스팟을 찾는 것 또한 자주 내 몫이다.


그렇지만, 나는 카메라를 잘 모른다.


PART 2


사진을 업으로 하는 지인들에게 어깨너머 몇 차례 카메라 다루는 법을 배운 적도 있다. 조리개가 뭐고 노출이 어떻고, ISO가 어떤 기능이고 하면서 분명 듣긴 들었다. 게 중 누군가는 과학 수업 마냥 빛의 굴절 각을 종이에 그려주면서 나에게 잘 알려주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여태껏 어깨너머 그 이상을 습득하진 못했다. 막상 카메라를 손에 쥘 때면 배웠던 것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찰나의 순간 포착만이 눈에 들어오는 걸 어째. 결국, 그냥 감으로 대충 이것저것 조작하다가 느낌이 오는 순간 '찰칵~'누르기 일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럼에도 나오는 결과물을 좋게만 봐주는 착한(?) 사람들이 곁에 많다. 덕분에 카메라에 대한 흥미는 그대도 유지한 채, 조금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조바심만 지니는 취미가 되었다. 기분이 좋거나, 날씨가 좋으면 카메라를 챙긴다. 가슴에 손을 올리고 사진에 대해 생각하면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굉장히 좋아하는 일이 맞는데, 왜 사진에 대한 열정은 100도까지 끓지 않는지. 친구가 스쳐 지나가듯 언급했던 개인 스케쥴은 잘 기억하면서, 정작 카메라 조작법은 왜 잘 생각나지 않을까. 나도 나를 참 알 수 없다. 카메라 다루는 법을 배웠던 과거의 나에게 배신당하는 현재를 몇 차례 살다 보니 가까운 미래의 나에게도 사진은 한동안 취미 영역에 머물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든다.


고백하자면 이십 대에 취미였던 연극이 일이 되었고, 삼십 대에 취미였던 글과 요가가 일이 된 것처럼, 사십 대의 버킷리스트로 취미인 사진이 ‘일’이 되길 내심 바라고 있다. 왜 사십 대냐고 묻는다면, 사진을 ‘일’로 하게 된다면 웨딩촬영 작가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내가 결혼하기 전에 웨딩촬영 작가가 되면 부러움에 배가 아파질  게 분명해서 뒤로 미루는 건 아니다, 내가 그 순간을 경험해보고 난 뒤에 타인의 결혼을 남겨주고 싶은 게 진심이다).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마치 영화나 연극의 한 장면처럼 기록해 주고 싶달까. 스스로 직접 볼 수 없지만, 상대방은 이미 느끼고 있는 당신의 가장 사랑스러운 찰나를 대신 포착하고, 어린 시절 내가 엄마에게 선물 받았던 그 앨범처럼 사진을 잔뜩 찍고 정성껏 꾸며 전해주는 일을 해보고 싶다. 내 시선 속 두 사람의 모습을 열심히 관찰해 예쁘고 담백한 문장도 곁들여 남기면 어떨까. 내가 만드는 작품에 담겨질 사랑이 언젠가 잠시 까먹거나 옅어질지 모를 감정의 한 줄기를 살포시 일깨워 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정말 설명할 수 없이 행복하겠지.


'서로 바라보는 눈동자가 여우비가 내리는 오늘의 습기를 머금어 상대방을 더 촉촉하게 비추고 있었다는 사실, 두 사람은 알까요?'


결론은 하나의 직업으로 먹고  없는 백세시대. 자연스럽게 나에게 일이  다른 영역처럼, 언젠가 사진도 나에게 일이 되는 찰나가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것.


그런 날이 오겠지?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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