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 글을 왜 쓰게 됐냐고 하면...)
스물아홉을 앞두기 두 해전, 나보다 먼저 ‘이 나이’를 먹었던 오빠가 있다. 어쩌다 함께 술 한 잔 할 때면, 니가 아홉수를 아냐며 올해는 아홉수가 진득하게 껴서 되는 일이 없다고 툴툴거렸다. 그래서 빨리 서른이 되고 싶다고 푸념을 늘어놓다 보면 어느새 술이 사람을 마시고 있었다. 그래도 일 년은 365일이나 되기에 옆에서 보면 좋은 일도 더러 찾아왔다. 오빠는 잘되면 자신 탓, 안되면 아홉수 탓으로 돌리며, 나름대로 긍정적인 합리화를 끼고 살았다.
어쩌면, 그때부터 다가 올 미래를 미리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 같다. 뭔가 이십대라고 하기엔 민망한 숫자 ‘9’가 주는 찜찜함. 서른은 아싸리 서른의 무게감이라도 느껴지지만, 스물아홉은 뭔가 겸연쩍다. 분명 열아홉엔 십 대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것 같은데, 미래의 나에게 그 시절 패기는 왠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코앞으로 다가오기 전에 결심했다. 자기 최면을 걸었다. 스물아홉은 이십 대가 아니다. 서른을 준비하는 나이다. 숫자가 주는 두려움에 휘말리지 말자.
하지만, 스물아홉이 점점 다가올수록 괜히 각오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십오 년 전 서른이 되던 외삼촌에게 계란 한 판을 보내주겠다며 엄청 놀리던 과거도 생각나고, 인생은 준대로받은 대로라 분명 나를 놀려댈 후배 녀석도 하나 있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착하게 살 걸 그랬다.
다행히 스물여덟 끝물에라도 반성을 절절하게 해서 그런지 시작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대학원을 수료하고 바로 일 할 곳도 있었고, 부모님도 두 분 다 건강하셨다. 군대 간 남동생이 휴가를 꼬박꼬박 잘 나오는 게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덕분에 새해의 시작엔 가족여행도 갈 수 있었다. 신년사주도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잘 흘러가는 한 해가 될 거라며 같이 본 4명 중 제일 좋다고 했다. 그리고 걱정했던 것보다 후배들은 나를 심각하게 늙은이 취급하지 않았고, 여지껏 내가 맞이해 온 새해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1월부터 시작해 한 해가 끝나는 12월까지 막히는 것 같다가도 잘 흘러갔다. 이년 전에 나보다 먼저 스물아홉을 살았던 그 오빠처럼 잘되면 내 탓, 안되면 아홉수 탓을 하며 두려움을 익숙함으로 바꿔나갔다. 그리고 난 당연하게 서른이 되었다.
불과 이주 전까지만 해도 스물아홉이었던 내가 오늘은 서른이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그 길목에 맥주 한 모금을 넘기며 잘 보내줬다고 생각했는데, 스물아홉이 자꾸만 뭔가 미련이 남았나 보다. 길을 걷다 보면 생각나고, 잠이 들기 전에 자꾸 내 옆에 누우려 한다. 그래서 할 것도 많고, 바쁘지만 녀석을 좀 달래주기로 했다.
나만의 방식으로 너를 위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니가 흘려보낸 그 순간들을 되찾아 우리 한 번 맛있게 다시 물어 뜯어보자. 먹다가 목마르면 맥주도 한 잔 하고, 심심하면 냉장고로 달려가 같이 먹을 치즈도 꺼내자. 혹시나 위장의 신호를 무시하고 싶을 만큼 기분 좋게 먹다가 체하더라도 일본에서 사 온 카베진이 있으니 괜찮다.
나의 스물아홉열두 달을 회고하는 기록이다.
비록 내일도 서른이지만, 이 책은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는 나의 스물아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