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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May 18. 2024

혼자서는 절대로 잘살 수 없는,

스물여덟이었던가. 대학원  학기를 졸업공연을 준비하면서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던 날이 있었다. 사람에 치일 대로 치여 그 어느 때보다 심연의 바닥에 가라앉아 하루하루 나를 잃어갔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던데, 어쩜 그리  선택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던지. 연극을 하다 보니 모든 결정에는  다수의 의견이 조율돼야했고. 책임을 져야하는 연출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러던 찰나, 잠깐의 여유시간이 생겨 난생처음 혼자 여행을 떠났다.


사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혼자 있어도 적막보단 고요한 소리가 필요하고,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생각이 멈추지는 않기에 굳이 애써 고독을 찾지 않는다. 그런데 그 때 만큼은 사람에 진절머리가 나도록 아주 제대로 시달렸던지 평소라면 가지 않을 나 홀로 여행이 재밌어보였다.


아무의 방해도 없이 혼자 보내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 속에 내 캐리어에는 옷보다도 책이 차지하는 공간이 더 많았다. '바다 보면서 책 읽어야지. 바다 보면서 사색 해야지. 바다 보면서 새로운 계획 짜야지. 바다 보면서 글 써야지.' 생각만으로도 뭔가에서 해방되는 기분. 그 감각에 취해 삼각대를 세워놓고 혼자서 사진은 또 얼마나 많이 찍었는지.


여행의 시작은 분명 아주 행복한 혼자였다. 그런데 그날 예약한 게스트하우스가 문제였던 걸까. 아니면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인 걸까. 일정을 마무리할 때쯤 들어간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룸메이트가 좋았던 걸까. 새로운 사람이 내 여행에 들어오자마자, 혼자 있는 시간이 심심해졌다. 그전까지 느껴지지 않던 외로움이 물씬 다가왔다. 그 여파로 다음 날 아침, 여행에서 할 것을 잔뜩 가져왔으면서도 게스트하우스 대청마루에 앉아 반쯤 멍 때리고 있었다. 아마 속마음은 ‘누가 나한테 말 좀 걸어주세요’ 였겠지. 그러고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내리 이틀을 같이 놀았다. 결국 사람을 피해 혼자 떠난 여행을 사람으로 꽉 채워 돌아왔다.


바다를 보면서 책을 읽는 대신, 누군가가 요즘 읽고 있는 책 이야기를 듣고.

바다를 보면서 사색 하는 대신, 누군가와 대화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바다를 보면서 새로운 계획을 짜는 대신, 누군가의 인생 계획을 들으며 나의 다음은 어떨지 상상해보았다.

바다를 보면서 글 쓰는 대신, 하루 종일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떠올린 생각을 짧은 기록으로 남겼다.

아, 사진도 누군가 찍어줄 때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이 더 많이 나오더라.


그 여행을 기점으로 누군가 혼자의 여행에 대해 물으면, "혼자 여행을 가도 사람을 만나서 오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여행 잘 안 가요. 어차피 가서 새로운 사람을 또 찾는데, 여행지에서의 짧은 시간 동안 누군갈 알아가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너무 아쉬워요. 그냥 있는 사람들이랑 더 잘 지내보려고요. 여행은 그 사람들이랑 가죠 뭐."라고 답한다.


여행이라는 시간은 스스로를 해방시킨다던데, 해방감 속에서 찾은 자아는 타인과 함께 할 때 더욱 나다웠다. 조금 낯설면서도 아주 익숙한 내 모습. 사람을 떠나 온 여행에서 결국 사람을 찾으며 더욱 견고해지는 나를 발견했다. 살펴보면 나는 지금도 혼자서는 뭘 잘 못한다. 혼자보단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역량이 더 발휘되고, 누군가의 자연스러운 소음은 내 작업환경의 필수요소다.  내 삶을 일구고 있는 것들 중 혼자서 하는 건 얼마나 있을까. 기껏해야 혼맥, 넷플릭스, 달리기 정도.


언젠가 후배가 "선배는 그렇게 사람을 만나는 에너지가 다 어디서 나와요?"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 답이 "야, 나 오늘도 아침에 수업하고 연습하고 너 만나러 왔는데. 너 본다고 생각하니까, 설레서 그런가. 수업이랑 연습이 다 너무 재밌던데."였다.


뭐든 혼자 잘 해낼 것 같지만, 사실 나는 당신이 있기에 더 잘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당신이 소중하다. 혼자서는 절대로 잘 살 수 없는 나에게 당신의 존재는 원동력이고 활력소니까.  내가 나로 살아가는 방식은 타인과의 부대낌이다. 타인을 통해 몰랐던 나를 더 잘 발견하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깨닫지 못했던 나를 성찰한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는 절대로 잘 살 수 없는, 예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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