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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시 Jul 31. 2020

브랜드가 경험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정동진 "썬크루즈 호텔"을 다녀와서 느낀 점






Q

건축가가 발휘하는 상상력이란 어떤 종류의 것일까요?

A

내가 아닌 남이 되어보는 거 아닐까요? 대단한 식견이나 특별한 의도 없이 건축물 안을 돌아다니는 누군가가 되어보고, 그 사람의 시선으로 시간을 보내고 공간을 둘러볼 수 있는 능력이라 할 수 있겠죠.




매거진 B에서 발행하는 잡스 시리즈 중 '건축가'편을 읽고 있다. 건축가가 발휘하는 상상력이라는 질문에 대한 조수용 발행인의 답변이었다. 내가 아닌 남이 되어보는 것. 타인의 시선으로 건축물을 바라보고, 경험을 설계하는 것. 마침 이 글을 읽다 보니 며칠 전에 다녀왔던 여름휴가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 여름휴가의 목적지는 강원도였다. 그중에서도 일출의 명소라 불리는 정동진. 정동진 해변가를 걷다 보면 저 멀리 절벽을 깎아지를 듯한 산 위에 신기하게도 배 한 척이 (이제는 두 척이 되어 버림) 올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 그 광경을 목격했을 때는 기이했다. 아니, 어떻게 산 위에 저렇게 큰 배가 있을 수 있어? 저게 뭐야? 하면서. 이 건물은 실제로 조선소에서 특별 주문 제작한 실제 유람선으로 만든 호텔이다. 이름하야 썬크루즈 호텔.



 높은 산 위에 위치해 있는 만큼 가파르게 올라가는 길 어귀에 붙어있는 대형 간판을 보게 됐다. CNN에서 선정한 생애 꼭 한번 가봐야 할 특이한 호텔이라고 적혀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됐다. 외관이 특이하고, 들어가는 입구부터 배를 타는 듯한 느낌이 들어 특별한 경험이 되는 건 맞긴 맞는데, 또다시 오고 싶을 만큼의 좋은 경험을 하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여행 내내 장마로 비가 와서 그 경험의 가치가 더 떨어졌을 가능성도 농후하긴 하지만)



1.

이렇게 멀고 먼 호텔 입구는 처음이야.


보통 호텔들은 호텔 로비 바로 앞에 차를 댈 수 있게 되어 있다. 호텔 입구에 멈춰 필요한 짐들을 모두 내려두고 그 이후에 주차를 하게 된다. 덕분에 무거운 짐들을 낑낑 들지 않고도 조금은 편리하게 이동이 가능하다. 그런데 썬크루즈 호텔은 주차장과 건물의 거리가 꽤 멀다. 건물 바깥으로 입장을 하기 위한 별도의 출입문이 따로 있는데, 호텔 투숙객이 아닌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호텔을 둘러볼 수 있게 입장료를 받기 때문이었다.



 짐이 많은 우리 식구는 주차장에서 어느 정도 걸어 호텔로 들어가 로비에서 캐리어를 가지고 온 뒤에 다시 차에서 짐을 캐리어에 실어 나르고서야 모든 짐을 옮길 수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때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는데, 미처 우산을 쓰지 못한 가족이 있었다. 내리는 비를 다 맞으며 짐을 끌고 로비로 헐레벌떡 뛰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여행의 설렘으로 반짝여야 할 표정이 좋지 않았다. 여행의 첫 시작이 불쾌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혹시 호텔로 들어가는 문 입구에 짐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캐리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혹은 짐을 이동시켜주는 직원분이 있었다면? 우리의 경험은 조금은 더 나아질 수 있었을까?



2.

시설 이용에 대한 안내 부족


비가 오지만 아쉬울 것 같아 수영을 하기로 했다. 수영복을 입고 1층에 위치한 인피니티 풀장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프런트에 올라가서 팔찌를 받아와야 한다고 했다. 옷도 갈아입을 옷을 가져와야 한다고 안내를 해주었다. 우리는 다시 방으로 올라가 갈아입을 옷을 챙겨 로비에 가서 입장권 팔찌를 차고 다시 수영장으로 내려와야 했다. 왜 한 번에 안내를 해주지 않았을까? 체크인을 하면서 미리 안내를 해 주었더라면, 다시 올라갔다 내려와야 하는 불편함은 겪지 않았을 텐데.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었을 텐데.




3.

간이 샤워실, 간이 환복실만 있는

인피니티풀


 멋스러워 보이던 호텔이 한순간에 정말 멋이 뚝 떨어져 보였던 순간은 바로 이때였다. 수영장에 딸린 샤워실이 없다는 것. 같은 건물 안에 숙소가 있기 때문에 샤워실이 없을 수는 있다. 그런데 방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샤워를 하지도 않은 축축한 젖은 몸으로 간이 환복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호텔 바닥이 대리석이라 물이 젖게 되면 다른 손님들이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수영장을 이제 막 들어온 손님들이 하나같이 다시 한번씩 더 물어보는 상황이 발생됐다. "샤워실이 없어요?" "옷을 꼭 갈아입어야 되나요?" 등등. 직원들은 손님들이 묻고 또다시 묻는 질문들에 끝도 없이 대답을 해야 했다. 당연히 호텔에서 미끄러져서 크게 사고가 나는 일은 없어야겠다. 그렇지만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한 것과 수영장에서 즐겁게 노는 손님들을 모두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었을까? 직원들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만들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생각지 않게 이 호텔에 머물면서 상대방을 생각하는 배려의 마음이라는 것을 자꾸만 되뇌게 되었다. 기업들에게 "손님은 왕이니까, 배려를 해주어야 해!"라고 당연히 강요를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정말로 느끼게 되었다. 브랜드의 경험이 얼마나 소비자에게 브랜드 충성심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작년에 비마이비에서 상우님이 2020년 올림픽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화제가 되었던 오모테나시에 대해 얘기해준 적이 있었다. 2013년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 총회에서 타키가와 크리스탈 도쿄 올림픽 홍보대사가 오모테나시를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고 한다.



우리는 여러분을 매우 특별하게 대접하겠습니다.
이를 일본어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오모테나시'
우리 조상들로부터 이어온 순수한,
온 마음을 다하는 환대의 정신을 뜻합니다.



 오모테나시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다. 친절을 베푸는 상대를 미리 헤아려 마음 씀씀이를 행하는 것이다. 공감, 배려, 역지사지, 이러한 마음가짐을 뜻한다. 무인양품에서는 종이백이 젖지 않도록 비닐로 한 번 더 포장을 해주고, 료칸 투숙객을 위해서는 따로 목욕 가방을 마련해 준다. 없어도 무방한 이런 섬세함들이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선물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브랜드가 소비자들을 위한 경험을 설계하는 데 있어, 나는 이 오모테나시 (타인을 위한 세심한 배려의 마음)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잡스 건축가 편에서 조수용 발행인이 얘기한 것처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의 이야기인 것 같다. 너무나도 특색 있고, 매력적인 공간인데 그 공간의 가치만큼 경험의 설계에서도 호텔을 찾은 손님들에 대한 세심한 마음이 더 더해졌다면 얼마나 더 매력적인 공간이 되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아쉬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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