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시간을 거슬러 10년 전쯤, 나는 삼성전자 스토리텔러라는 대외활동에 열심이었다. 그러다 운 좋게 해외 취재를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바로 온스타일에서 방영하는 '스마트 TRAVELER in Tokyo'라는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갤럭시탭만 가지고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2011년, 이제 막 갤럭시 탭이 출시되었을 시절이었다. 손호영, 리에, 김준, 김나영이 갤럭시 탭을 가지고 스마트한 여행을 한다, 라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취지였는데 미리 여행 정보를 준비하고, 맛집을 찾고, 가고 싶은 장소로 이동하는 모든 과정이 갤럭시 탭 하나로 이루어졌다. 손호영 씨와 리에씨를 인터뷰했을 때, 갤럭시 탭 하나만 가지고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며 놀라던 그런 시기였다.
그로부터 이제 고작 10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생경하고 놀랍던 기술은 이제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 되었고 이제 우리는 얼마든지 좀 더 가볍게, 그리고 편리하게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마음 편히 떠날 수 있는 이런 시대에도 여전히 훌쩍 몸만 가볍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 엄마다.
우리 가족은 여행을 떠날 때 냉장고와 식량창고를 탈탈 털듯 음식을 바리바리 싸간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준비하는 건 고스란히 엄마의 몫이 된다. 장시간 차로 이동하며 먹을 간식거리부터, 숙소에서 먹을 아침 식사, 그리고 음료와 주류까지 가방과 아이스박스는 금세 빵빵해진다. 여행하기 전부터 당일 아침까지 엄마는 여행에 가져갈 음식들을 준비하느라 몸이 바쁘다. 쉬려고 떠나는 여행인데, 엄마는 여행을 떠나는 와중에도 가족들을 챙겨야 하는 임무 때문에 절대 마음이 가벼워질 수가 없는 것이다.
- 엄마! 또 뭐를 이렇게 많이 가져가!!
- 이거는 차에 가면서 먹을 거 ^^
- 이거는 또 뭔데??
- 이거는 우리 아침에 먹을 반찬! 엄마가 어제 만들었지롱~^^
- 아니 그냥 조식 먹자니까~
- 에이~ 한 끼 정도는 만들어 먹으면 되지~ 거기 조리 다 된다며~
- 엄마 좀 빼보자~ 뺄 수 있는 거 없을까?
- 음 물도 있어야 되고, 우유도 아침에 먹고, 과일도 가져가고, 아침에 김치찌개 먹어야지~~!!
- 엄마, 한 번쯤은 가볍게 떠나보고 싶지 않아~?
- 그치! 엄마도 그러고 싶지~!
- 그럼 우리 아침 만들어 먹지 말고 조식 먹자!
- (아빠까지 합세하여) 그래 여보~ 조식 먹자~
- 그..래? 다 싸놨는데.. 음! 그래.. 그럼.... 그래 볼까...?
엄마의 여행 가방에는 처음으로 각종 반찬과 쌀과 김치찌개 재료들이 담기지 않았다. 아침 식사 재료가 빠졌어도 가방의 무게에는 크게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여행 기간 중에 엄마가 엄마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한 가지를 줄일 수 있어 나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여행 당일 아침, 엄마가 혹여나 숙소에 도착했을 때 안 가져왔다고 후회하실까 염려되어 후회하면 안 된다는 당부의 말을 몇 차례나 건넸다. 하지만... 여행지에 도착해 숙소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엄마는 탄탄하고 넓은 식탁과 조우했고, 그 순간 "안돼!!!!!!"라며 탄식하셨다. 집에 두고 온 스팸과 참치와 하얀 쌀 봉지가 눈 앞에서 동동 떠다니시는 듯했다. "가져왔어야 했어. 여기 잘 되어있네~ 이 식탁에서 김치찌개 끓여 먹으면 진짜 맛있을 텐데!!!" 엄마는 여행의 첫날이 저물어갈 때까지 데려오지 못한 반찬들을 그리워하며 노래를 부르셨다.
엄마 덕분에 사실 우리 가족들은 입까지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입이 심심할 때쯤이면, 먹을 게 끊임없이 나왔으니까. 여행지에서도 익숙한 엄마의 손맛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맛이 없네, 그래서 별로 먹지를 못했네, 같은 투정을 부릴 일이 없으니까. 뿐만 아니라 남해처럼 끝도 없이 고속도로를 달려야 하는 여행 일정에는 중간중간 관광지를 찾아 길바닥에서 좋은 경치를 만끽하며 김밥과 라면을 먹곤 했는데, 풍경을 함께 먹어서 그런지 그 맛은 정말이지... 꿀꿀꿀꿀꿀맛이었다. (갑자기 너무 먹고 싶다..)
여행지에서의 엄마표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아쉽지만, 그럼에도 나는 엄마가 이제는 여행을 떠날 때 두 손 가벼이 떠나셨으면 한다. 얼마든지 휴대폰 하나만 가지고 떠날 수 있는 이 시대에, 엄마도 가족에 대한 모든 책임들을 모두 훌훌 떨쳐버리고 여행의 시간을 오롯이 즐기셨으면 좋겠다.
아니,
하루빨리 여행지에서 엄마에게 음식을 해 드릴 수 있는
딸이 되어야겠다!
뱀발)
스마트 TRAVLER in Tokyo 취재기 2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