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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시 Aug 14. 2020

잃어버린 세계

당연했던 것들을 잃는다는 것은






 끝날 줄 모르고 내리던 비가 이틀간 잠시 그쳤다. 온 세상이 척척하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내리더니 지구가 습기를 먹은 것만 같다. 마치 따끈한 물 속에서 걸어다니는 갑갑한 기분. 비가 잠시라도 그쳐 답답해하던 마음이랑 산책을 했다.


 오랜만에 오후 반차를 내고 가보고 싶던 코사이어티라는 공간엘 갔다. 자주 지나다니던 곳이었는데 왜 거기있는 줄 몰랐을까 싶었다. 마치 방콕에서 만났던 어느 카페처럼 좁은 골목을 들어서니 건물 하나가 눈에 보였다. 높은 층고의 삼각형 지붕, 여러개의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몇 개의 계단을 오르면 조그맣고 네모난 공간에 티비, 책상, 책장, 의자가 높여있는 다락방이 모습을 드러낸다. 티비에 시선을 돌리니 느릿한 시선의 이동이 느껴지는 멋진 영상 하나가 재생되고 있었다. 어느 맑은 날, 강인지 바다인지 모를 넓은 곳에서 물장구를 치는 사람들이 보였고, 곧이어 파도치는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함께 장난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장마가 아니었더라면,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면 쉽게 볼 수 있었을 여름휴가 때의 모습이었다. 갑자기 아스라히 먼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니, 온 사방이 깜깜했다. 분명히 집 안에서 사람 목소리가 나는데, 불빛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갑자기 내 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이유를 들어보니 차단기가 내려가 전기가 다 꺼진 상태였던 것이다. 무섭다며 고래고래 울고 있는 아윤이를 번쩍 안아 그림자 놀이를 해주기 시작했다. 아뉴의 발에 불을 가까이 가져다 댈수록 발은 마치 우리를 잡으러 온 괴물처럼 무시무시했다. 온 집안에 어둠이 왔다 갔다를 몇 차례 반복하는 전쟁같은 밤을 보내고 전기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코로나에 이어, 장마에, 거기다가 누전기 차단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들을 당연했던 일상들을 빼앗기고 보니, 그건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감사해야 할 일들 투성이었는데, 너무 익숙한 나머지 감사함에 무뎌졌던 것이었다. 일상을 잃고 나니 소중한 것들이 보였다. 하지만,뭣보다도 소중했던 일상을 다시 되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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