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 엄마한테 "엄마, 내가 쓴 글이랑 내가 찍은 사진으로 책을 만들면 참 좋겠다." 흘리듯 얘기했던 적이 있었다. 그 후로 3년이 흘러, 이틀 전 나는 엄마에게 "엄마, 나 책 만들었어" 라며 자랑스럽게 내가 만든 책을 건넸다. "어머, 벌써 만들었다고?" 흘리듯 한 얘기였던 터라, 엄마가 잊고 계실 줄 알았는데 엄마는 화들짝 놀라며 냉큼 내가 건넨 책을 받아 들었다.
독립출판을 꼭 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스토리지북앤필름을 드나들었던 그때로부터 벌써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반년에 걸쳐 책을 만들 수 있었다. 책을 만든다는 건 쉽지 않았다. 끝도 없는 나와의 싸움이 이어졌다. 퇴근을 하고서도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 편히 쉬지 못했고, 에라 모르겠다 편하게 쉴라치면 해야 할 일 목록에 쓰인 글쓰기가 눈 앞에 아른거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었다. 주말마다 노트북을 들고나가 카페에서 3-4시간은 기본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올해는, 마음 편히 쉬어본 적도 오랜 기간 휴식을 취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지난한 과정을 지나, 완성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이렇게 독립출판을 준비하면서 나는 수시로 변화하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만날 수 있었다.
독립출판 준비할 때의
감정 변화 10단계
1단계 ㅣ 설렘
뭘 만들어 볼까? 무슨 일이든 처음은 늘 설렘과 함께 한다.
2단계 ㅣ 열정
다양한 아이디어로 의욕이 넘친다. 이것도 만들고 싶고, 저것도 만들고 싶고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뿜어낸다.
3단계 ㅣ 즐거움
한 가지 주제가 정해지면 즐겁게 몰입되어 글쓰기를 시작한다. 초고 작성은 3-4줄의 글로 짧게 흐름 정도를 쓰기 때문에 콧노래 부르며 만들 수 있다.
4단계 ㅣ 당황
목차를 구성하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계속해서 뒤엎는 과정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이 좋을까, 목차와 글을 쓴 후 며칠 있다가 다시 목차를 바꾸게 되는 그런 식이었다.
5단계 ㅣ 답답
계속 뒤엎기 시작하면서 처음의 생각은 모두 잊어버리고 글쓰기는 제자리걸음을 걷기 시작한다.
6단계 ㅣ 멘붕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계속 읽는 사람을 신경 쓰게 된다. '이 책을 도대체 누가 읽어? 창피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7단계 ㅣ 절망
머리를 쥐어짜 내어도 글은 써지지 않고, 오랜 시간 유지해온 생활에 절망하고 지침
8단계 ㅣ 포기
안 할래, 쉴래 그냥, 하면서 포기하게 된다.
9단계 ㅣ회복
그러다 어느 순간 독립출판을 한 사람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10단계 ㅣ 뿌듯
7-9단계를 10바퀴를 돈 다음에야 10단계에 도착할 수 있다.
이 10단계의 감정 변화를 모두 겪고 보니,
독립출판하면서 생각했던 몇 가지를 마음속에 깊이 새겨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독립출판이 내게 남긴 것
1
일단 쓴 글은 뒤를 돌아보지 말자.
나는 글을 쓰고, 다음날 그다음 글을 쓸 때 그 전날 쓴 글을 읽어보게 되었다.
고칠 내용이 있나 잠깐 훑어보려던 참이었는데, 그 하루는 또다시 전날 쓴 글을 워싱을 하고 있다.
처음 초고를 쓸 때는 가볍게 그 주제에 대해 말하고 싶은 내용들을 가감 없이 쭈욱 써보는 것부터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글을 쓰면서는 수정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수정에 늪에 빠져버리면, 아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너무 오랜 시간에 지치기도 하고, 자꾸만 내가 무슨 부위 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걸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자주 떠오른다. 그런 수정의 늪에 발이 빠지지 않게 잘 건너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평생 빠져 변화할 수 없을 것이다.
3
감추지 말고, 솔직해지자.
브런치에 있던 15편의 글을 재편집하는 과정을 초반에 가지게 되었는데,
나중에 재편집해서 책을 뽑아보니, 의도했던 바와 다른 내용의 글이 되어 있었다.
내가 스스로 창피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스킵하며 재편집하다 보니,
주제에 대한 이야기에 중간중간 점프가 느껴지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을 감추려 하지 말고, 솔직하게 글을 쓰자.
4
맨 처음 시작은 설렘과 즐거움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즐겁자고 시작한 일, 욕심엔 독이 묻어있다. 완벽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완벽하지도 못할 거면서 왜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업무와 책 작업을 동시에 잘하려고 하다 보니, 몸에 무리가 왔다.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5
계속해서 자기 최면이 필요하다. 내가 책을 만들고 난 뒤에 삶을 꿈꿔보고, 책을 만든 사람들의 곁에서 자극을 받으며 원하는 일을 쟁취해 나가기 위해서는 자기 최면이 필요한 것 같다.
6
인쇄는 어려워 - 미리 사전에 주의해야 할 사항이 무엇일지 잘 체크를 하자.
나는 여백을 계속해서 실수했다.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쇄를 하고 종이를 자르는 과정이 있는데, 그때 예쁘게 잘 자르기 위해 약 3mm가량을 여백을 남겨줘야 한다.
아직 최종적으로 책이 주문되지는 않았지만,
완성된 책을 손에 넣으면서 나는 정말 큰 뿌듯함을 느꼈다.
이 책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잘 가닿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