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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시 Sep 25. 2020

독립출판 하기를 정말 잘했다






"엄마, 나 회사에 퇴사하고 싶다고 말했어"


저녁을 다 먹고 그릇을 싱크대에 하나씩 다 옮겨두고는, 평소라면 바로 방에 들어갔을 나인데 바로 다시 식탁에 앉았다. 오랜만에 엄마와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 오랜만이라는 감회에 엄마가 젖어들 새도 없이 나는 폭탄 고백을 날렸다. 펑! 퇴사! 펑! 퇴사!



 매일 저녁을 집에서 먹지도 못하고 걸핏하면 야근이라며 늦은 밤 녹초가 되어 들어오는 딸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며 그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늘상 얘기하셨던 엄마였다.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면 얼마나 좋았겠니, 나중에 결혼을 해서는 회사 다니면서 아이를 키울 수는 있겠니, 나의 일에, 나의 미래에 엄마는 걱정이 많으셨다. 모든 부모들이 자식에게 바라는 마음은 딱 한 가지일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딸이 내가 살았던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안정되게, 행복하게 살기 바라는 마음.


아무리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던 그 일도 되려 내가 그만두고 백수가 되어 보겠다고 선포를 하니 엄마도 덜컥 겁이 나셨던 것 같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엄마의 얼굴엔 걱정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봐, 왜 매번 그렇게 힘든 길을 선택하려고 하는 거야, 엄마는 간절한 마음으로 내 마음이 돌아서기를 바라시는 것 같았다.


그날 밤엔 혼자 이불을 붙잡고 참 많이 울었다. 엄마에게 세상 물정 모르는 어수룩한 딸이 된 것 같아, 이제 앞가림을 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어쩌다 나는 부모님 걱정을 시켜드리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부모님께 멋지고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은데 그게 왜 이렇게 잘 안 되고 힘든 걸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밤새 차오르는 슬픔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엄마한테 퇴사 고백을 한지, 일 년쯤이 지났을 때였나. 엄마의 바람처럼 나는 다시 회사에 남아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회사를 다니던 즈음이었다. 주말에 엄마랑 함께 뒷산에 올라 잠시 벤치에서 쉬다가, 엄마가 갑자기 떨려오는 목소리로 그때 얘기를 꺼냈다. "엄마가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너에게 참 미안하다." 엄마에게 폭탄선언을 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엄마 마음속에는 그때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딸의 결정에 고개를 끄덕여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멍처럼 남아 있던 것이었다. 그때 나는 또다시 마음이 아팠다. 엄마에게 내가 드리지 않았어도 될 상처를 드렸구나. 평생 그 미안함을 짐처럼 이고 가실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로부터 또다시 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게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 9월 초쯤, 저녁을 먹으러 엄마와 오붓하게 앉은 식탁에서 엄마에게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엄마 나 책 만들었어" 일 년 전에 엄마에게 딱 한 번 사진이랑 글을 엮어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동안 그 말을 꼭 품고 사셨던 건지 책을 내밀자마자 엄마의 첫마디는 이거였다. "응? 책이 이렇게 빨리 만들어졌어???"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던 내 꿈 이야기가 분명 엄마에게는, 나는 꼭 커서 꼭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될 거라고 말했던 꼬꼬마 유치원 시절의 머나먼 이야기처럼 들렸을 것이다. 나도 이렇게 빨리 내 책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엄마는 엄마 앞에 혜성처럼 나타난 내 책을 두 손에 꼬옥 들고 계속해서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바라보셨다. 무엇보다도, 퇴사를 하고 싶다며 엄마에게 폭탄선언을 했던 그 날의 감회가 새록새록 떠올라 감동이 벅차오르시는 듯했다.




그다음 날, 퇴근을 할 때쯤 카톡이 울렸다. "우리 딸 너무너무 똑똑하고 대단하고 너무 놀라워서

엄마 가슴이 쿵닥쿵닥 벅차오른다~~ 대단해 우리 딸" 엄마가 읽으시려나 했는데 2시간 만에 한 권을 거의 다 읽어 간다며 신이 나서 얘기하셨다. 퇴근을 하고 문을 여는데 엄마의 손에 나의 책이 들려있었다. 엄마는 한 글자라도 놓칠 새라 마지막 장까지 꾹꾹 눌러 읽으시는 듯 했다.


엄마의 모습을 보며 2년 전 엄마에게 퇴사 고백을 했던 나를 떠올려보게 됐다. 그때 난 엄마에게 얼마나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어리숙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한 딸로 비치는 게 싫다고 하면서 나는 얼마나 엄마한테 신뢰를 주고 엄마가 걱정하지 않아도 혼자서 내 길을 잘 만들어갈 수 있는 믿음직스러운 딸로 보일 수 있게 행동했었나? 나 스스로도 나를 믿지 못하고 흔들리는 상황에서 엄마는 내가 얼마나 불안하고 아슬아슬해 보였을까?



며칠 뒤, 형부와 아윤이까지 우리 여섯 식구는 엄마에게 퇴사를 고백했던 그 식탁에 쪼르르 둘러앉았다. 낯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치는 나를 뒤로 하고 출판 기념 파티를 해야 한다며 모두들 분주했다. 엄마는 100권이 넘는 책을 보며 프로필 사진을 해 두어야 한다며 여러 권을 모아 두고 사진을 찍으셨고, 언니는 주변에 홍보를 해야겠다며 나보다 더 신이 나 있었다. 아빠는 도대체 언제 이걸 다 적어놨던 거냐며 넌지시 물으셨다. 형부는 앞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라며 만년필을 선물로 주셨다. 부모님과 언니도 축하 용돈을 선물로 주었다.


퇴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더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처럼, 나는 책을 만듦으로써 가족들에게 나의 미래를 더 신뢰할 수 있는 믿음과 자랑스러운 딸, 동생이라는 행복감을 선물해 줄 수 있었다. 독립출판하길,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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