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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시 Nov 27. 2020

머리를 하러 갔다가 배운 프로페셔널의 조건





살면서 주기적으로 꼭 가야하는 곳이 있다. 바로 헤어샵이다. 어차피 자라면 다시 잘라버릴 머리카락은 왜 계속해서 자라나는 것일까. 얼마 전에 지저분한 머리를 정리하고 싶어 집 근처 단골 헤어샵에 다녀왔다. 몇 달간 밋밋했던 생머리를 볶아줄 요량을 찾은 것이었다. 몇 년을 정착하지 못했던 헤어샵을 정착하게 되었던 건 그 헤어샵에서 만난 점장님 덕분이었다. 쌤과 처음 만났던 건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머리를 단발로 자르던 시기였다. 고등학교 때 이후로 짧게 잘라본 적 없었는데 떨리던 마음을 붙들고 쌤에 손에 내 머리를 맡겼던 날이었더란다. 그렇게 새롭게 탄생한 나의 짧은 단발 머리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 이후로 한 번, 두 번 다시 가볼까? 하는 생각에 계속 발걸음을 하던 것이 몇 년 동안 꾸준히 가게 되었던 것이다. 머리를 기르면 꼭 쌤에게 펌을 해달라고 해야지. 단발로 자른 뒤,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마음 속으로 나와의 약속을 했었는데 머리가 꽤 길어 정말로 그 약속을 지키러 오게 됐다.


다른 헤어샵과 다르게 그 헤어샵에서는 특히나 더 기분이 좋고, 배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 드는 건 깔끔한 매장 때문일까, 그 매장에서 주는 바닐라 라떼가 맛있어서일까, 쌤이 예뻐서일까, 머리를 감는 샴푸실이 어둑하니 분위기가 있어서일까, 샴푸할 때 마사지가 시원해서일까. 아마 이 모든 이유들이 다 합쳐져서 일지 모르겠다. 몇 시간 동안 엉덩이 뿐만 아니라 피곤한 눈도 꼭 붙이고 있어 언제 끝나려나, 싶던 차에 이제 마무리 샴푸를 하게 됐다. 두근두근 펌이 어떻게 나왔을까. 샴푸를 끝내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기 시작하는데, 쌤의 손길이 멈칫 멈추었다. 이내 다시 손길이 빨라지며 옆 직원에게 무언가를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너무 펌이 세게 들어가서 뒷부분만 조금만 풀어드릴게요, 상냥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내게 얘기를 건네고는 직원이 가져온 걸 머리에 바르기 시작한다. 그 어느때보다도 집중해서 이곳 저곳 바르면서 머리를 쭉쭉 빗으시는 쌤. 그때 나는 아마 쌤에게 반했던 것 같다. 원하는 그 머리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 집중하는 그 카리스마 있는 눈빛에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멋있다' 라고 내뱉었다.


사회초년생 때 다녔던 회사에서 나는 '프로페셔널이 뭘까?'를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그건 그때 내가 했던 일을 나 스스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정의했기 때문에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질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멋지게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전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최근에 놀면 뭐하니를 보면서 유재석에게 반했던 순간이 있었다. 나는 그를 연예인, 우리나라 최고의 MC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누군가에게 그는 자신을 '서비스를 하는 일, 그게 제 일이에요' 라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지금까지 봤던 유재석에서 180도 다른 유재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관찰하고 사람들의 기분을 캐치할 수 있는 사람, 그 분위기를 리드하기 위해 내가 더 친절해지고 분위기를 스무스하게 만들어가는 사람. 그는 그냥 최고의 MC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그의 태도를 보며 아, 정말 프로페셔널하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프로페셔널이라는 건 어쩌면 태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마는, 그 일을 어떤 자세로, 어떤 생각으로 임하고 있는가 하는 것 말이다.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고, 집중하고, 될 때까지 시도해보면서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 머리를 자르러 갔다가, 프로페셔널의 태도에 대해 배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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