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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시 Dec 24. 2020

내 마음과 똑 닮은 책을 만났지 뭐예요






가끔 책을 읽다 보면 앉은자리에서 책 한 권을 해치울 정도로 흡입력 있는 책을 만나게 된다. 도대체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야? 손에서 책을 놓는 단 일초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궁금한 스토리를 가진 책이 그렇고, 지금 내가 가진 삶의 고민과 문제에 대한 해답이 여기 있다며 얘기하는 자기 계발 류의 책이 그렇고, 마지막으로는 마치 내가 쓴 것마냥 내 마음을 그대로 글로 옮겨둔 책을 만났을 때 그렇다.


마지막에 해당하는 책을 최근에 읽게 됐다. 최근에 신작이 나와서 최근에 읽게 된 것이지, 그동안 나는 그의 책들이 새로 나올 때마다 서점엘 가서 그의 책을 들고 올 수밖에 없었으며 그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비슷한 감정을 되풀이하며 느꼈던 것 같다. 그의 문체가 읽기 쉽게 쓰인 구어체의 형태를 띠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정말 나와 비슷한 고민과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 마음과 똑 닮은 글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일까.


그 작가의 이름은 이석원. 이석원 작가를 처음 좋아하게 되었던 건 2017년에 출간되었던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때문이었다. 생각지 못했던 흐름의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그 스토리가 실제 존재하는 배경을 바탕으로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난 후부터 이거 정말 실화 아니야?라는 호기심으로 출발해 나는 이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이후로 <실내 인간>, <보통의 존재>,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등 그가 쓴 책을 모두 읽었으며, 그가 쓴 책이라면 당연히 구매해야 할 도서 리스트에 추가되어야 마땅했다. 이런 마음을 품게 된 건 나뿐만 아니라 함께 활동하고 있는 독서 모임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이번에도 그의 신작을 함께 읽게 된 것이었다.


책뿐만 아니라 그는 내게, 이제는 안녕을 고해버린 음악이라는 분야에서도 꽤 좋아하는 아티스트였다. 그는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이었는데 그의 노래는 쓸쓸하고 고독한 가을과 꽤 쿵짝이 맞았고 가을을 맞이하는 문턱에서 나는 늘 그의 노래를 찾아들었다. 라이브 공연을 보고 그의 노래에 푹 빠져 하루 종일 그의 노래를 들었던 건 대학교 신입생 시절의 이야기다. 그의 노래는 내게 노래 그 이상이며, 내 지난 청춘을 소환하는 힘을 가진 저장창고이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신곡은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내가 이렇듯 애틋하게 생각하는 그의 새로운 신작이 최근에 출간되었다. 책의 이름은 <2인조>. 나는 그 책을 읽으며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치 올 한 해 동안의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석원 작가는 한동안 아팠다. 몸의 어떤 부분이 아팠던 것인지, 마음이 아파서 몸에서 의사들도 알 수 없는 거부반응을 보인 건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한동안 아팠고 그 아팠던 시기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치유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1월, 2월... 12월 매달의 기록이라는 형태로 글을 쓴 것이었다. 그는 매월이 지나가며 자신이 어떤 부분이 힘들었고, 그 부분을 치유하기 위해 나만의 매뉴얼을 만들고 있으며, 어떤 한 사람으로부터 얻게 되는 삶의 용기와, 자신이 몰입하게 된 잃고 싶지 않은 취미에 대한 이야기, 그러면서 몸이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여느 때와 같이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치 술 한 잔 기울이며 대화하듯 말이다.


올해 나는 <불안이 나를 덮쳐올 때>라는 책을 출간했다. 몇 년 간 불안에 휩싸여 힘들어했던 시기를 극복해낸 과정을 담고 있는데, 각자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나 자신과의 고군분투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그 안에 '나를 사랑하는 방법'과 '삶에 대한 나만의 확신'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나도 모르게 혼자서 소름이 돋았던 것이다. 이석원 작가의 글은 늘 자신을 향해 있다. '나'의 성격, '나'의 삶에 대한 성찰,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 숨기고 싶을 수 있을 만한 부분까지 가감 없이 글을 통해 얘기한다.


요즘은 갑작스레 사들인 옷이 정말 내게 필요한 건지,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였는지, 이게 이 돈을 쓸 가치가 있는 것인지 가끔은 도저히 모르겠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과 싸우고 있다.
인생은 전쟁도 결투도 아닌데 왜 난 계속 나와 싸우고 있을까.

- 이석원, <2인조> 중에서


나 또한 매일 나 스스로와 싸운다. 확신이 서지 않는 일에 대해 내면의 나와 무수한 토론을 벌이기도 하고, 전쟁을 선포하기도 한다. 나 스스로와의 싸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부지기수이면서 나는 또다시 나와의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최근 나는 독립출판을 모두 판매하고 나서 한동안 허무함을 앓았다. 뭐 대단한 성과를 낸 건 아니지만, 목표했던 '독립출판 꼭 하기'를 달성하고 나니, 이제 다음엔 뭘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내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나는 나 스스로를 채근했다. 빨리 뭘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쉬는 것도 쉬는 게 아니었다. 뭘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의미를 잃으니 쉬는 것도 재밌지가 않았다. 창피했다. 책에 써 둔 열정 넘치고 패기 넘치던 나의 모습이 증발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책을 만들었다는 사실조차도 창피했다. 그런데 이석원 작가의 책 속 한 구절을 읽으며 따질 생각이 없던 와인 코르크가 맑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뿅! 뚫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슈퍼맨이 되지도, 아예 딴사람이 되지도 않았지만 나는 고작 원래의 나로 돌아왔을 뿐이지만, 바로 그 원래의 내가 누리던 일상을 되찾고 유지한다는 게 얼마나 귀하고 어려운 일인지는 지금의 코로나 시대를 사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 이석원, <2인조> 중에서


그의 말처럼, 책을 썼다고 나는 슈퍼맨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원래의 나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나는 어쩜 책을 쓰고 나서 더 완벽한 사람을 위한 강박에 시달렸던 것은 아닐까. 인생의 큰 변화가 있었지만 나는 단지 제자리로 돌아왔을 뿐인데. 조금 변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나는 좋은 방향을 찾을 수 있다 믿음과 목표만 있다면 꼭 결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실행이라는 근육을 단련할 수 있었다는 것. 이 책을 읽고 내 안의 생각을 더 견고히 만들며, 현재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또 다른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이래서, 이래서,

내가 이석원 작가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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