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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시 Oct 05. 2018

그 시절 우리가 나눴던 마음










어제 친한 동생의 소개로 색다른 전시회를 다녀왔다. 우린 거친 호흡을 내쉬며 좁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고, 5분 정도 걷자니 오른편으로 달동네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여기에요, 하며 안내인의 발걸음이 멈춰 선 그곳엔 전시회라고 하기엔 다소 아담해 보이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전시회에 어리둥절했던 기억보다도 지금 또렷하게 남아있는 잔상은 그곳에서 보게 된 1996년생의 영상이었다.






그 영상 속엔 한 고등학교가 나온다. 주인공은 고2, 미성숙과 성숙 그 경계에 있는 호기심 왕성한 나이 낭랑 십팔 세 남학생. 토이캠으로 찍어 몽환적이며 섬세한 인물 표현이 뛰어났다던지, 같은 반 남학생을 좋아하게 되며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게 되는 성장기의 스토리라던지, 뭐 그런 것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건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고 경험할 수도 없는 생경한 풍경들이었다.


교복과 체육복, 제비뽑기로 정해지던 옆자리 짝꿍, 선생님의 교탁, 칠판, 급식소,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친구들과 함께 팔짱 끼고 뛰어 내려가던 계단, 학업에 지쳐 쉬는 시간만 되면 책상에 얼굴을 묻고 쓰러져 자느라 바빴던 반 친구들. 이젠 그저 아득하기만 한, 내 삶 속 어딘가에 자리한 기억들. 눈요기하기 좋은 예쁜 카페보다 학교 앞 허름한 분식집 떡볶이 하나에 즐겁고, 손쉽게 카톡 하나로 여러 친구들과 그룹채팅을 할 수 있다는 건 꿈도 못 꿀 시절이었다.





그 영상을 보고 있자니 얼마 전 들어가 보았던 중학교 시절의 메일함이 생각났다. 그때는 버디버디나 네이트온으로 친구들과 연락하거나 메신저에서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은 이메일이 유일한 연락의 통로였다. 중학교 2학년 시절의 내 친구들이 보낸 메일을 하나하나 열어보았다. 메일의 내용은 딱히 없었다. 그냥 오늘 뭘 했고, 날씨는 어떻고, 지금은 밥을 먹었고, 학원을 가야 되니 내일 또 메일 보내겠다 등의 무의미한 내용이 반복됐다. 메일의 마지막을 항상 장식한 건 모두들 “답멜 꼭 보내라”였다. 별 다른 내용도 없는 것 같은데 그땐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이렇게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읽지 않음’이 없어졌는지 답장은 왔는지 꼬박꼬박 챙겼던 걸까? 아무 생각 없이 킥킥대며 읽다가도 나도 모르게 마음에 걸리는 문장들이 하나씩 생겨났다.




야 너 왜 삐졌냐??
너 내일 나 모른척하면 죽어~~~~~~~
야 너 왜 나 모른 척 해!!
공부하다가 모르는 거 있음 너 혼자해 ㅋㅋㅋ
야 너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지!?


이토록 솔직한 대화라니. 생경한 풍경을 마주한 것만큼이나 왠지 모르게 낯부끄럽고 실소가 터지는 문장들이었다. 이 친구들은 지금 15살의 그때처럼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살고 있을까? 물론 사람 나름의 차이가 있었겠지만 유년 시절 우리는 대개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을 여과 없이 표현하곤 했다. 싫어, 좋아, 기뻐, 짜증나, 울고 싶어, 미워, 사랑해 같이 아무 생각 없이 내 감정을 솔직하게 상대방에게 전했다.


 그때와 다르게 주름이 많이 자라난 지금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잃었거나 느껴지는 감정에 무뎌졌거나 타인을 너무 배려하느라(혹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에) 감정을 숨기기에 바쁘다. 좋아하는 감정의 물결을 알아채지 못할 때도 있고 서운한 감정이 생겼을 때 "그냥 참고 넘어가지 뭐" 하며 관계의 틀어짐 속에서도 서로의 마음은 묵인한 채 피상적인 대화를 이어가는 경우도 많다.


생각은 단순했지만 다양한 추억들로 삶은 풍성했던 어린 시절에 비해 점점 삶은 획일화되고 생각은 많아지는 요즘. 우연히 마주친 그 영상 하나로 솔직함, 그리고 순수함에 대해 생각해본다. 더 나이가 먹었을 때 나는 지금보다 더 솔직해질 수 있을까, 지금 나에게 순수함은 남아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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