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인 6년 차의 방황기 <불안했던 날들의 기록>
사원, 주임, 대리.. 직급이 높아지면서 나의 역할과 내가 맡은 업무들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주니어 때는 프로젝트 AE인 사수님이 분담해주는 일을 서포트하면서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 하나에 몰입할 수 있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전체 프로젝트의 A부터 Z를 모두 알아야 하는 AE로 성장해야 했다.
광고회사 AE(Account Executive)는 클라이언트와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브랜드가 직면한 문제를 분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을 설정하여 이에 맞는 광고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한다. 이 과정에서 AE에게는 많은 능력들이 요구된다.
TF를 이끌고 프로젝트를 리딩할 수 있는 리더십과
프로젝트 매니징 능력
(예산 세팅부터 계약서 작성, 스케줄링, 클라이언트의 피드백을 꼼꼼하게 체크하는 능력 등)
브랜드와 시장, 소비자를 파악하기 위한 분석력,
제안서 작성을 위한 논리력,
문서 작성 능력, 프레젠테이션 능력,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메시지와 제품을 매력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희뜩한 크리에이티브,
좋은 아이디어를 선별할 수 있는 판단력,
클라이언트에게 아이디어를 셀링할 수 있는 설득력,
협업사와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협상력 등.
이렇게 나열한 것 외에도 매 프로젝트마다 다른 상황에 직면하며 또 다른 스킬들을 익혀야 하는데 이 모든 것들을 너무나도 스무스하게 잘해나가고 있는 선배들을 보면 '도대체 이 모든 걸 다들 어떻게 하고 있는 거지?' 그저 신기하기만 했고, 내가 가 닿을 수 없는 신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AE에게 필요한 스킬들 중에서 내게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리더십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반장을 해본 것을 제외하고, 리더의 자리에 있어본 적이 없다. 4학년까지 반장을 했던 일도 반 친구들을 위해 마음을 쓰고 봉사를 하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지, 반을 통솔하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가고 반 친구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개선하는데 앞장서고 싶어서 반장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경영학과 재학 시절에도 무수한 발표 플젝을 할 때에도 조장이 되기보다는 누군가의 뒤에서 팀을 서포트해주는 역할을 주로 해왔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포트하는 역할에 익숙했던 내가 AE가 되어 프로젝트를 리딩을 하게 되다니. 멘붕에 빠졌다.
회사 4년 차쯤 되었을 때, 처음으로 메인 AE를 맡게 되었다. 처음으로 제안서를 쓰게 되었는데, 모르는 부분을 물어볼 때마다 팀장님들의 의견이 서로 달랐다. 어떤 분은 A가 맞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분은 B가 맞다고 이야기하고. 다양한 의견들 중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에 확신을 가지고 팀장님을 설득하고 제안서를 써야 하는데 나는 갈대처럼 흔들렸다. 정답을 알 수 없어 괴로웠다. 함께 일하는 TF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무능력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좌절하고, 배울 것 없는 아무것도 모르는 선배인 것이 창피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회사의 업무는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이라기보다 해야만 하는 일에 가까워져 갔다. 수년 동안 광고를 전공과목으로 공부하고, 공모전에 나가서 상을 타면서 차근차근 광고인으로서 발돋움한 사람들 틈에서 자꾸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의 단점들만 도드라지는 이 역할에 시간을 쏟는 게 맞는 걸까, 내가 잘하는 것들에 더 힘을 쏟아 그것을 개발시켜 나가야 하는 건 아닐까 나날이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