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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내 속엔 괴물이 산다

광고인 6년 차의 방황기 <불안했던 날들의 기록>

by 예시






#05 내 속엔 괴물이 산다




나도 모르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지는 순간이 잦아졌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현실이 잘 따라와 주지 않는 날들이 많아지고 있다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한다는 게 힘에 부친다.
5년이 넘도록 이렇게 심했던 적이 없었는데
행복이라는 것, 웃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잃어버린지는 이미 오래이고
푸석푸석한 얼굴에 잔뜩 낀 먹구름, 날 선 대답, 매일 빨갛게 충혈된 두 눈
거울 속에 비친 이런 거지 같은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어서 빨리 이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회사는 점점 나를 괴물로 만든다.
차라리 이 현실이 꿈이고, 꿈이 현실이었으면.

-2017년 일기 중-




어느 순간부터 일상도, 마음도, 관계도 모두 균열되기 시작했다. 아무와도 얘기하고 싶지 않아 점심도 매일 혼자 먹었고, 표정마저 말을 잃어갔다. "싫어" "짜증나" "안 해" "그만하고 싶다" 사탄에 잡혀 먹힌 것처럼 부정적인 말들을 일상어처럼 내뱉었다. 성장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했던 야근도 너무 싫고, 5시 땡치면 칼같이 퇴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불공평하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지 못했다. 길을 걷다 갑작스레 푹 빠진 구렁텅이 속에서, 나가려는 노력도 없이 누군가 구해주길 기도만 하고 있는 사람처럼 나는 그냥 빨려 들어가는 진흙탕 속에 그대로 빠져있었다. 그렇게 수년간 묵혀온 고민은 점점 해결할 수 없는 습관이 되어갔다.


늦은 시간까지 키보드를 두드리며 영혼 없는 표정으로 일을 하는 나를 보고 지나가던 팀장님이 말했다.

"엘리, 병들어 가는 것 같아.."

평소의 나였다면 "아니에요! 괜찮아요~" 라며 힘들어도 걱정말라는 듯 대답했을 텐데

"네, 온몸과 마음이 썩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라는 대답이 자동응답처럼 흘러나왔다.


부정적인 말, 점점 썩어가는 마음을 품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 같은 존재가 되어갔다. 나는 그동안 내가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부정적으로 변하게 만든 건 모두 회사 탓이라며 그 화살을 모두 회사에게로 돌렸다. 회사를 다니면서 감정을 모두 잃은 무표정한 사람들을 불쌍하다 생각해 왔는데.. 그 불쌍한 그 사람이, 바로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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