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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행운

광고인 6년 차의 방황기 <불안했던 날들의 기록>

by 예시






#14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행운


요즘 내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있다. "클라이언트 너무 좋아요!" 지금 내가 맡고 있는 브랜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글로벌 브랜드인데, 입사 이래로 경험해본 적 없는 카테고리의 일이었고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부담감이 상당했다.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다. 한 한 달간 푹 쉬고 싶다. 매일매일은 무의미해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 없이 자꾸만 삶은 바스러져간다. 불편한 마음, 피폐해진 정신, 어떻게든 붙잡고 앞으로 꾸역꾸역 나아간다. 모든 일에는 스트레스가 동반되어야 하는 걸까? 자도 자도 피로는 쌓여간다. 만성피로. 어떻게 풀어야 하지.

어제는 울다 잠에 들었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다. 가족들과 단란한 저녁도 먹지 못하고, 매번 툴툴대기만 하고.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걸까, 내 인생은 왜 매번 쉬워지질 않는 걸까. 하루 종일 풀가동 중인 뇌를 모조리 싹 다 없애버리고 싶었다. 가열된 컴퓨터 본체처럼 하루 종일 머리가 뜨겁다. 퇴근과 동시에 스위치를 좀 꺼둘 수 있었으면. 괴롭다.

- 2018년 10월 일기 중


전과 다르지 않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아니,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시기였는데도 힘든 것보다 성취감이 큰 프로젝트였다. 처음 시도해보는 형태의 일이어서 어떻게 이 계획들을 정리하고 실행해 나가야 하는지 골머리를 썩이는 시간을 보냈었는데, 그 모든 고통의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확실하게 나에게 배움이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고, 거기에 더불어 클라이언트까지 너무 러블리했기 때문이었다.





나와 가장 긴밀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했던 클라이언트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것으로 알고 있는데 6년간 일했던 그 어떤 클라이언트보다 똑똑하고, 꼼꼼하게 일을 잘했다. 싫고, 좋음의 의사표현이 굉장히 명확했다. 맺고 끊음을 적절하게 할 줄 알았고, 각자가 해야 할 일들을 분명하게 나눠 정리하는 것을 참 잘했다. 정말 많은 업무들을 해결해야 할 텐데 어떻게 이런 것까지 싶을 정도로 콘텐츠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브랜드 사이드에서 필요한 피드백을 주었다. 그러다가도 크리에이티브한 부분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우리를 믿고 의지해 주었다. 우리에게 무리한 일이다 싶으면 자신들의 선에서 알아서 처리했고, "일이 많으시죠, 너무 수고 많으세요"라며 매일 오고 가는 카톡은 그녀가 클라이언트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라는 생각을 프로젝트가 끝나는 순간까지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런 그녀 덕분에 나는 '더 잘 해내고 싶다,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는 동기 부여가 되어 일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일을 할 때 어떤 일을 하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일하느냐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게 해 준 분이었다. 그동안 클라이언트를 너무 어렵게만 대해 왔었는데, 그녀 덕분에 좀 더 클라이언트에게 적극적으로 친근하게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년 하반기는 나에 대해 또 다른 발견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일을 할 때 배움에 큰 가치를 두며 브랜드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꽤 많은 영향을 받는구나 라고.




"대리님 새해 복 듬뿍 받으세요"
새해를 알리는 1월 1일에 그녀에게 카톡이 날아왔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카톡에 올해도 열심히 이 프로젝트에 임해보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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