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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신 Feb 18. 2021

데이터 리터러시는 교양이 아니라 '테크놀로지'다

Data literacy is a 'technology'

한 학생을 불러세워서 질문 3가지를 던져본다. 부모를 경시한 적 있지? 친구를 험담한 적 있지? 선생님을 뒤에서 몰래 욕한 적 있지? 학생은 그렇다고 답한다. 나는 이 학생이 그런 답을 했다는 사실만을 모아서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선언할 수 있다. 이 학생은 부모를 경시하고, 친구를 험담하며, 선생님을 욕하는 학생이라고 말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사실들을 모아 선언했을 뿐 거짓말을 섞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학생을 나쁜 학생으로 각인하게 될 것이다.


그 학생에게 이번엔 이런 질문 3가지를 던져본다. 부모님을 사랑하지? 친구를 위해 작은 희생을 감수한 적 있지? 선생님을 존경하지? 학생은 또 그렇다고 답한다. 그럼 다시 그 사실만을 모아서 이번에는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선언할 수 있다. 이 학생은 부모를 사랑하고, 친구를 향한 희생 정신이 있으며, 선생님을 존경하는 학생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사실만을 모아 선언했을 뿐 거짓말을 섞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학생을 훌륭한 학생으로 각인하게 될 것이다.  


어느 것이 그 학생의 진짜 모습일까? 둘다 아니다. 취사 선택된 사실들에 의해 나쁘거나 착한 학생인 것처럼 꾸며졌을뿐, 두 모습 모두 그 학생에 대한 총체적 진실을 담고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선언은 사실들을 조합해 만들 수 있는 거짓말의 일종이다. 그러나 그 점을 간파하지 못하는 독자나 청중이라면, 전달자의 의도적 편집에 의해 특정 사실이 부각된 정보에 눈이 가려져 그 너머의 진실을 총체적으로 바라보지 못할 것이다. 혹 그 점을 알더라도 사실이 사실임을 검증하는 수고나 비용이 커서 이러한 거짓말을 잠정적 사실로 그냥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강양석 컨설턴트의 책 <데이터 리터러시>를 읽으며 위의 예시가 떠올랐다. 정치 프로파간다의 사례 같지만 저기서 '선언'을 '데이터'로 바꿔도 대강 말이 되는 걸 알 수 있다. 사건, 현상, 인물에 관하여 우리가 접하는 데이터들은 그 사건, 현상, 인물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한다. 그게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데이터 중에서는 반쪽짜리 진실만 담겨있거나 불온한 의도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페북, 유튜브, 공중파 방송, 신문 기사 속 짜깁기된 데이터를 보면 그렇지 않나. 이런 데이터 왜곡의 시대 속에서 특정한 의도가 담긴 데이터에 의해 감정이 동요되지 않고, 그 너머의 진실을 이끌어낼 줄 아는, 이성적이며 계몽된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으로 데이터 리터러시(Data Literacy)만한 게 없는 것 같다.  


강양석 컨설턴트(필자가 찍어준 사진이다)

저자와의 개인적인 인연으로 몇 차례의 협업을 거치며 데이터 리터러시를 공부하는 가운데, 데이터 이면의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능력은 교양의 수준을 넘어 일종의 테크놀로지로 간주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 속의 무수한 데이터들은 각종 통계 기법과 시각화 기술, 편집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사실'이라는 외피를 둘러쓴 채 우리를 찾아온다. 이런 데이터들은 테크니컬하게 톺아보지 않으면 진위를 검증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고 복잡하게 구성돼 있다. 그럼에도 각종 데이터를 스스로 검증할 테크니컬한 사고력을 가진 이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셀프 검증'의 과정을 생략하고 학위나 권위가 있는 사람들의 전언과 분석을 덥석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뒤통수를 맞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만약 데이터 리터러시를 기술이나 라이선스처럼 '취득'하는 사람들이 풍부해진다면 세상이 좀 달라질까?


저자는 <데이터 리터러시> 에서 데이터 리터러시 역량을 16가지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데이터가 생성되는 순간부터 데이터를 문제 해결에 접목시키는 과정을 다양한 비즈니스 사례를 바탕으로 상술해놓았다. 나는 이 책을 프로파간다적 관점에서 독해했지만 그것이 이 책의 메인 테마는 아니다. 데이터를 삶의 소품으로 활용하고 싶은 사람 혹은 머릿속의 생각 엔진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번만 읽으라고 쓴 책이 아니니 참고서처럼 여러 번 읽는 게 좋다. 그러다 보면 무릎을 탁 치는 순간이 생길 것이다.


참고: 인터뷰|'데이터 코딩' 아니다, 해법은 '데이터 넛지'

참고: 데이터 대항해 시대의 콜럼버스, CDO가 온다


*본 독후감은 저자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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