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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신 Jan 01. 2024

결혼하고 싶어서 써보는 글

About wedding

얼마 전 친한 형네 부부 집들이에 다녀왔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의 집에 초대받은 건 처음이었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는다는 건 나에겐 대단히 큰 의미를 갖는다. 집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을 타인인 나에게 기꺼이 개방해준다는 건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환대 혹은 그 이상이니까. 부모, 이모, 친동생 그리고 전 여친을 제외하고선 아직 그 누구도 집에 들여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렇다.


티는 안 냈지만 긴장된 마음으로 들어간 형네 집은 참 따뜻하였다. 보일러로 데워진 따뜻함이 아니라 가족이 거주하는 가정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포근함랄까. 온기도 온기지만 잘 정리된 가구, 다양한 종류와 각도의 조명, 아기자기한 피규어들, 결혼식 사진 앨범들로 구성된 형의 컬러풀한 집은 독신자가 거주하는 그레이한 집과 대조되었다. 한 사람이 사는 집과 두 사람이 사는 집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니!


형수님께서 소고기, 바게트, 치즈, 토마토 등으로 만들어주신 이태리식 메뉴를 샴페인과 곁들여 먹으며 시시콜콜한 담소를 재밌게 나눴다. 곧이어 합류한 친구 한 명까지 네 명이서 얘기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며 참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와 '즐겁다', '좋다'라는 감정을 공유하며 이토록 즐거워했던 게 언제였던가. 최근의 나에겐 결핍된 유형의 시간이어서 그럴까. 새해가 된 아직도 집들이의 여운이 남아 이렇게 글을 쓴다.

집들이로 보낸 시간들과 형네 부부의 모습을 회상하며 결혼과 행복에 관해 곰곰히 생각해본다. 20대였으면 딱히 고민해보지 않았을 텐데, 이런 무거운 주제를 굳이 글로 풀어내고 있는 걸 보니 (겉으론) 어른이 되긴 한 것 같다. 나는 혼자 있을 때 행복한 사람인가, 둘이 같이 있을 때 행복한 사람인가. 아마 둘 다인 것 같다. 지난 연애의 경험들과 싱글 라이프를 반추해보면 그렇다.


혼자서 유튜브 보며 여유롭게 치킨을 뜯거나 혹은 내가 좋아하는 카페꼼마 여의도점에 가서 책을 느긋하게 읽으며 시간을 보내면서도 행복을 느꼈었다. 그런가 하면 사귀던 사람과 김포 어느 공원의 한적한 곳에서 돗자리 펼쳐놓고 꽁냥대거나, 적당히 어두운 백양로를 걸으며 감성 가득한 대화를 나누거나, 타지의 어느 시설 좋은 스파에 가서 양머리 하고서 철없이 놀거나, 어떤 영화를 호텔에서 같이 보다가 입을 맞췄던 순간들도 나의 행복에 포함된다.


물론 결혼해본 적이 없는 내가 연애 경험만으로 결혼 생활을 짐작하는 건 무리일 수 있다. 부부가 같이 무언가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일들의 스펙트럼은 커플들이 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할 테니까. 그렇다고 짐작을 아예 못할 것도 없다. 같이 밥을 해먹고, 출퇴근하고, 전화나 카톡으로 안부를 묻고, 공통의 목표를 위해 돈을 갹출하고, 여행도 가고, 때로 진지한 주제로 대화하는 등 연인과 했던 일들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출산이나 부동산 취득 같은 일들을 제외하면.


싱글 라이프와 기혼 라이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뭘 선택해야 할까? 둘 다 그럭저럭 잘 해낼 자신이 있지만 굳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래도 결혼을 선택하고 싶다. 단순히 결혼만 하면 행복해질 것 같아서는 아니다. 두 명의 이기적인 개인이 만나 가족을 이뤄 산다는 정겨움, 가족이 되더라도 마주하게 될 무수한 균열과 조율, 혹은 다양한 감정의 진폭들을 겪으며 겉모습만 어른이 아니라 진짜 어른의 모습으로 누군가와 함께 나이 들고 싶어서다.


그런 상대방이 올해 나에게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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