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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신 Aug 14. 2021

아버지를 인터뷰했다

얼마 전 아버지를 인터뷰했다. 31년 살며 처음 시도해본 인터뷰였다. 기자 노릇하면서 제법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었는데, 아버지를 인터뷰하긴 처음이었다. 경상도 부자지간답게 평소 대화도 거의 나눈 적 없는데 인터뷰라니. 그런데 그럴 만한 계기가 있었다. 

아버지는 퇴직 후 지방에서 친환경·신재생 에너지 발전 사업체를 운영하고 계신다. 40년간 엔지니어로 근무하신 덕에 기술력은 으뜸이지만, 사업체를 홍보하는 데는 영 재주가 없다. 컴퓨터 활용도 제대로 못하신다.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 겨우 하시는 수준이다. 그 흔한 블로그 하나 개설해서 업체 홍보 글 쓰는 건 꿈도 못 꾼다.


얼마 전 고향 내려갔다가 그걸 알게 됐다. 영업이랑 홍보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동네랑 길목에 현수막 광고를 몇 개 달았단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육십 나이에 힘드실 텐데. 게다가 그런 광고를 누가 본다고. 차라리 블로그에 글 써서 카톡으로 링크만 쫙 돌려도 훨씬 나을 거랬더니, 자기는 그런 거 할 줄 모른댔다.


아들이 나설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알겠나. 이때를 위해 지금껏 글밥을 먹고 살게 된 것일지. 그렇게 아버지를 돕겠다는 결심이 서자,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아버지 이름으로 블로그를 개설해 기본적인 프레임을 잡았다. 그간 당신이 작업한 사진들을 모아 편집해 올리고, 사업체와 관련된 콘텐츠도 몇 개 올렸다. 


마지막으로 아버지 프로필을 작성할 차례였다. 그런데 그냥 직장 경력만 건조하게 나열한 프로필은 왠지 재미도 감동도 없을 것 같았다. 차라리 아버지가 살아온 삶을 스토리로 올리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문제는 그때 발생했다. 막상 뭔가를 쓰려고 하니까 머릿속이 백지가 되는 거였다. 


아버지의 인생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아버지에 관한 지극히 짧고 파편적인 얘기들만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다. 아버지가 아니라. 박OO라는 사람, 가장, 엔지니어에 대한 한 편의 완결된 이야기가 내 머릿속엔 부재했다. 그의 삶을 주제로 한 진솔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나의 아버지(얼굴은 가렸다)

나에게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심 가장 가깝다고 믿어왔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낯설고 심지어 때론 불편하기까지 한 존재. 부모이고 혈육이라서 꼭 잘 알아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해 아는 정도가, 직장 동료를 아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은 좀 서글픈 일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인터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기왕 쓰는 거, 제대로 된 블로그 소개글을 쓰려면 그냥 대화가 아니라 인터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인터뷰는 목적과 형식이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길게 이야기를 뽑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는 내가 많이 해봤던 것이기도 하고. 


고등학교 시절을 시작으로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쭉 청해 들었다. 중간 중간 기자처럼 질문도 던져가며 아버지의 삶을 취재했다. 부모를 대한다는 느낌보단 한 명의 인터뷰이를 대한다는 느낌으로. 아버지가 아니라 여러 편의 서사를 가진 한 명의 개인을 기록한다는 느낌으로. 동네 중국집에 마주 앉아서 얘기했다.


어색함과 익숙함이 교차했다. 아버지가 자기 얘기를 이렇게나 상세하게 해주는 사람일 줄은 몰랐다. 엔지니어를 진로로 선택한 계기, 서울대 공대 입학을 포기한 사연, 사우디에 파견 가 생고생을 한 이야기, 신혼 초에 창업을 결심한 배경, 늦은 나이에 기적처럼 대기업에 취업한 이야기, 그리고 현재...


나는 그가 원래 말수가 적고 자기 얘기를 잘 안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물어보지 않아서 말해주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너무 많이 알게 됐다. 나는 왜 그동안 아버지를 궁금해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까. 아버지가 아닌 한 개인,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이렇게나 새롭게 마주할 수 있는데.


사람들에겐 나름의 서사가 있다. 그 서사에 좀 더 귀기울이고 궁금해해보자. 익숙했던 한 사람에게서 새로운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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