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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신 Jul 12. 2020

엄마와 독서 토론을 하다

10일 동안 <호모데우스> 읽고 쓰기 프로젝트

엄마는 공부하는 걸 좋아한다. 특히 국내외 정치와 역사, 종교와 문화 같은 주제에 많은 관심이 있다. 고향집 테이블 위엔 이지성 작가의 <에이트>  같은 대중 인문학 서적들이 몇권씩 쌓여 있다. 엄마의 취미 중 하나는 책의 내용을 나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와 통화를 하다보면 30분이 넘어가는 일도 부지기수다. 대학원은 내가 아니라 엄마가 갔어야 했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 이유다.


그러다 최근 엄마가 휴직을 하게 됐다. 반년 가까이 쉬면서 아픈 몸도 좀 추스를겸, 소일거리도 할겸 선택한 휴이었다. 덕분에 엄마가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평소보다 늘어났다. 엄마와의 통화 시간은 1시간 정도로 늘어났. 한번은 여느날처럼 통화를 하데 문득 엄마에게 글쓰기 과제를 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읽은 책 내용도 되새기고, 생각을 기록하는 일에 대한 즐거움도 전해주고 싶어서였다.

 

엄마는 학창시절 책읽기와 글쓰기를 즐겼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종종 엄마가 썼던 독서록, 일기, 편지 등을 책장에서 꺼내 읽으면서 감탄한 적도 있다. 하지만 엄마는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한 이후부턴 뭔가를 쓰는 행위와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글쓰기를 좋아해도 도통 글 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휴직을 기회로 엄마에게 글쓰기 추억을 다시 소환시켜주기 위한 프로젝트를 고안해보았다.


프로젝트는 일방통보식으로 시작됐다. 어느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독서토론과 글쓰기를 시작하자고 말다. 혹시 모를 치매를 예방하려면 말하기와 쓰기를 통 두뇌를 자극해야 한다는 게 나의 논리였다. 집안에 치매 가족력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그럴 연세도 아니었지만, 프로젝트에 정당성을 부여하기엔 치매만큼 좋은 게 없었다. 엄마에게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를 주문해서 집에 보내줄 테니 하루에 50페이지씩 읽고 토론 후 글쓰기 활동을 하자"라고 말했다. 엄마는 마치 기다렸다는듯 "응 그래~"라고 하셨다. 그렇게 글쓰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호모데우스> 저자 유발 하라리가 서문에 쓴 "한국의 독자들에게"를 막 읽고 있다는 엄마


<호모데우스>는 엄마의 관심 주제가 가득 담긴 책이다. 나는 몇년 전에 다 읽었지만 엄마와 다시 한번 읽으면서 내용을 곱씹기에 나쁘지 않은 책이었다. 전체 분량은 약 500페이지인데 하루에 50쪽씩 열흘안에 끝내는 걸 목표로 삼았다. 나는 일단 엄마에게 책을 읽고 느낀 점과 적용할 점을 저녁에 말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통화를 마쳤고 다음날 나는 '정보 교환'과 '의학의 발전과 미래'에 대한 질문을 엄마에게 전달했다. 통화로 나눴던 내용을 글로 정리해서 200자 이하 카톡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엄마는 <호모데우스>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잘 말했다. 하지만 이해한 걸 글로 옮기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게다가 과거에 글을 썼었지만 오랫동안 펜을 놓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카톡을 기다렸다. 마침내 엄마는 아래와 같이 긴 답장을 보내줬다. 그 내용을 브런치에 일부 옮겨보도록 한다. 기본적인 맞춤법과 문장 구조는 내가 살짝 수정했다.


엄마의 카톡 원본


"전 세계 정보교환이 빨라지면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단 시간에 고임금 낭비없이 효과를 볼 수 있는 건 장점이고, 자극적인 소재를 제재없이 내보냄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파괴하는 것은 단점이라 느낌."
"일본은 가해자이고 우리는 피해자라며 용서는 없다는 적대감을 드러내며 공분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씁쓸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 그런 걸까?" 
"광복한 지 70년이 훌쩍 넘었다 이제는 후손에게 무엇을 남겨줘야 하나 생각해볼 일이다. 원망과 분노인가? 용서와 화해로 양국간 협력관계로 나아가는 것이 더 옳지 않은지 생각하게 된다. 독일을 보면 유대인을 향한 선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며 법적인 장치를 만들어 당시의 주범을 끝까지 찾아내어 값을 치르게 함으로 유대인과의 관계를 회복해 나가는 것을 보면 우리는 왜 저렇게  못하는걸까?"
"정부나 정치인이 때만 되면 언론을 이용해 프레임을 만들어서 국민을 이용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잘못된 정보, 거짓된 정보를 통해서 상처받는 자는 누군가? 결국은 서로서로 생채기를 내는 우리가 아닌가?"
장래 무슨 병인지조차 모르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지난 날을 돌아보면 작금에 이르러 무슨 병이든 질환이든 초기에 발견만 하면 수술이나 약물을 사용하여 생명을 연장시켜 나가는 능력은 참으로 탁월하다(이것 또한 하나님이 우리로 정복하도록 하게 하신 것). 
하지만 이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돌아간다면 좋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차등으로 나뉘기 때문에 의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빈부격차는 더 심할 거고 그로 인한 상실감 또한 크지 않을까? 공산 국가는 자본이 없기에 의학기술이 떨어질 거고 또한 그 국가에 충성하는 상위 1프로에게만 혜택이 주어지고 자본 국가는 국가답게 가진 자는 최상의 것을 먼저 누릴 권한을 가지려 할 테니 여기서 또한 빈부 격차가 나뉠 것이니 허무와 상실로 더 많이 사람들은 죽지 않을까?


프로젝트의 첫 시작은 성공적인 거 같다. 글을 읽어보니 엄마도 나 못지 않게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진다. 모르긴 해도 엄마는 복잡하게 얽힌 생각의 실타래를 풀면서 머리가 꽤나 아팠을 것이다. 머릿속에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각종 예문과 배경지식을 정제된 글로 정리하는 건 대단한 지적 역량을 요구하는 일이니까. 다행히 엄마는 내가 내준 글쓰기 과제를 잘 해냈다. 맞춤법은 조금 틀리긴 했지만 꽤 오래 글을 안 쓴 사람치고는 문장력이 나쁘지 않아서 놀랐다.


알고보니 엄마는 카톡으로 바로 답을 적어 보낸 게 아니었다. A4용지에 본인이 생각한 걸 종일 자필로 쓴 다음 카톡으로 옮겼다고 했다. 오랜만에 글 쓰느라 머리에 쥐가 나는 줄 알았다며 엄마는 전화로 툴툴대셨다. 그냥 대충 쓰셔도 됐을 걸, 안경을 쓰고 책상에서 끙끙대며 글을 썼을 엄마 모습이 생각나 괜히 웃음이 나왔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목표를 또 잡았다. 엄마가 보내준 카톡을 모두 모아 나중에 단행본 책으로 엮어 선물해줄 생각이다. 출판을 목표로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추억 간직용으로. 일단 가제목은 <엄마와 아들의 지적 대화록>으로 지었다. 그러려면 이 프로젝트를 장기적으로 끌고 가면서 대화 기록을 많이 남겨놔야 한다. 엄마가 2차, 3차 프로젝트에 응해줘야 할 텐데...어떻게든 설득을 해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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