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을 가기 전 내가 계획한 여행 테마 중 하나는 대학과 사교육이었다. 도쿄에는 도쿄대, 와세다대 등 한국에도 잘 알려진 명문 대학들이 있다. 기왕에 도쿄에 간 김에 일본 최고 대학들도 한번 둘러보고 오면 좋지 않을까 싶어 도쿄대를 여행 동선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단순히 건물 구경만 하면 재미가 없지 않나. 그래서 도쿄대 학생들과 이야기를 좀 나눠볼 요량으로 미리 인터뷰 질문지를 준비해 갔다. 준비하면서 혼자 피식했다. 누가 기자 아니랄까봐. 내가 생각해도 참 유별나다 싶었다. 타국에 여행가서 이런 일정을 짜는 사람이 나말고 또 있을까.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도쿄대로 향했다.
도쿄대 입구의 아카몬(붉은 문)
대략적인 분위기와 인상부터 설명하자면, 도쿄대는 보통의 한국 대학들과는 느낌이 아주 다르다. 혼고산초메 역 방면에 위치한 이 대학은 인근에 상권이 형성돼있지 않아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고요하다. 주변 거리도 소박하고 아담하며 왕래하는 사람들도 적다. 예컨대 신촌 거리 같은 활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캠퍼스나 대학 건물들은 작고 소박했다. 아니 소박하다 못해 초라한 느낌마저 들었다.대학의 외양이 대학의 본질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관리가 잘된 느낌은 아니었다. 건물들의 미감이나 색감, 디자인은 볼품이 없었고캠퍼스 크기는 한국외국어대학교만했던 거 같다. 일본 최고의 명문대에 기대해볼 법한 심볼을 찾기가 어렵다랄까. 문득 도쿄대 학생들에게도 한국인들처럼 '캠퍼스에 대한 낭만' 같은 개념이 존재하는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도쿄대 야스다 강당
지나가는 도쿄대 학생 몇명을 붙잡고 도쿄대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건물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다들 학교 중앙에 위치한 붉은색의 허름한 야스다 강당 건물을 가리킨다. 신좌익 학생운동이 벌어진 역사가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으며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관련하여 내용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다.
1960년대 후반 일본에서는 파리 68혁명이나 미일 안보투쟁의 영향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좌익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커지게 됐다. 그 여파로 1969년 도쿄도 내의 여러 대학에서는 전공투(전학공동투쟁회의, 신좌파 학생들로 구성)들이 결성됐다. 이들은 국공립, 사립대 수업료 인상 반대, 학원 민주화 등을 요구하며 바리케이드를 치고 무력 투쟁을 벌였다. 당시 도쿄대에서는 의학부 학생들을 중심으로 인턴제도 폐지를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으며 대학 당국과도 마찰이 빚어졌다.
이때 도쿄대학에서도 전공투가 결성됐고, 관련 학생들이 점거한 건물이 바로 야스다 강당이다. 대학 측은 경찰기동대를 동원해 이들을 제압하려 했으나 이들의 반발이 너무 거세 마치 공성전을 방불케 하는 전투가 벌어졌다고 한다. 검게 그을린 야스다 강당 전면부는 당시의 흔적이라고. 결국 이들은 추가 투입된 기동대에 의해 제압됐다고 한다. 물리적인 한계도 있었지만 투쟁 방식을 두고 발생한 내분과 대중의 공감을 사지 못한 투쟁 목적, 지속적인 투쟁 동력의 상실 등의 이유로 인해 결국 그들끼리 다투다 와해됐다고 한다.
1969년 야스다 강당 점거 투쟁 당시 사진
좌익 운동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내가 늘 품고 있었던 생각과 거의 맞아떨어지는 대학 학생 운동임을 느끼게 된다. 역사적으로 좌익 운동은 성공 혹은 실패가 아니라 통상 끝이 흐지부지해지는 결말을 맞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설정한 목표는 크고 추상적인 데 비해 내외부적인 운동 동력이 잘 따라와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내용들을 도쿄대 학생들이 잘 알고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우리도 또한 대학의 역사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모르지 않나. 필요한 건 대학의 브랜드일뿐. 몇몇 도쿄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들도 자세히 알지는 못하는 모양새였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들도 영어를 썩 잘하진 않았다. 이야기를 좀 오래 하고 싶어도 언어의 장벽이 컸다. 내가 일본어를 공부하든지 해서이들과 인터뷰를 길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