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심 Mar 07. 2023

'주말에 뭐 했어요?'라고 말하면 죽는 병

빈말을 할 바에 차라리 입을 닫는 INFJ

내향인, 그중에서도 INFJ인 나는 빈말을 잘 못한다. 빈말을 할 바에 차라리 입을 닫는다. (가끔 빈말을 거짓말과 헷갈리는 사람이 있는데, 빈말은 ‘실속 없이 그냥 해보는 말’이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데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런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가깝지 않은 사람들과 스몰토크나 아이스브레이킹을 할 때 쉽게 고장 나버린다.


나는 맞은 편에 앉은 상대방의 주말이 궁금하지도 않고, 헤어스타일이 바뀐 이유와 휴대폰 배경화면 속 인물이 누구인지도 전혀 궁금하지 않다. (MBTI는 조금 궁금하다) 우리를 둘러싼 어색한 공기가 제발 주말에 뭐 했는지 물어보라 속삭여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차라리 그 어색한 공기를 견디는 쪽을 택한다.


직장 동료가 ‘주말에 뭐 했어요?’라고 묻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회사에서는 월요일 아침 흔하게 건네는 안부 인사 중 하나다. 하지만 난 직장 동료의 주말이 전혀 궁금하지 않다. 분명 상대방도 같은 마음이지만 인사치레 정도로 건넨 말이었을 것이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봤을 수도 있겠지만, 나로선 상상할 수 없다. (이건 여담인데,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쩐지 그럴싸한 답변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도 든다) 

"그냥 집에서 쉬었어요"라고 답하고 자연스레 이어져야 할 다음 말을 하기까지가 꽤 고통스럽다. "OO님은 뭐 하셨어요?" 역시 궁금하지 않다. 주말에 운동을 했거나,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거나 하는 정보는 내 뇌에 담을 마음이 없다. 그럼에도 상대가 그랬듯, 나도 예의상 묻는다. 돌아오는 답변을 듣고 또 한 번 고장이 난다. "아, 그러셨구나…"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스몰토크와 아이스브레이킹이 꼭 필요하다는 걸 잘 알면서도 쉽지 않다. ‘휴일에 뭐 할 거예요?’, ‘월급 들어오면 뭐 할 거예요?’, ‘집에서 쉴 때 뭐 해요?’ 등의 질문을 받으면 정말 순수하게 이런 생각이 머리에 스친다. ‘진짜 궁금해서 하는 질문인가? 알아서 뭐 하려고 묻지?’ 상대를 뻘쭘하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하다. 내가 주말에 고등학교 동창 상철이랑 자주 가는 곱창집에서 소주 서너 병 마실 거라는 사실이 대체 왜 궁금한지 말이다.


가깝지 않은 사이라면, 이런 공허한 대화보다는 차라리 지금까지 상대를 관찰하며 얻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대화가 좋지 않을까?

‘주말에 영화 OOO 보려고 하는데 이거 봤어요?’ 라거나 ‘저번에 말한 전시회 다녀왔어요? 어땠어요?’ 또는 ‘건물 1층에 새로 생긴 식당 가봤어요?’ 정도의 질문이 낫지 않나 싶다. 이런 유형의 질문은 1) 곧바로 대답이 나올 수 있게끔 배려하는 질문이며, 2) 진심으로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며, 3) 상대의 관심사를 적당히 반영한 질문이라는 점에서 훨씬 답변이 수월하다. 이런 질문이라면 고장이 날 리도 없다.


좋은 의도로 건네는 빈말에 자꾸만 상대가 고장 나려 한다면, 약간의 정성을 들여보는 건 어떨까. 로봇이 사람이 되는 기적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인사치레 중에서도 ‘다음에 밥 한번 먹어요’는 내가 가장 금기시하는 말이다. 지키지 못할 공허한 약속은 기분 좋으라고도 하지 않는다. 다행히 상대가 건네는 ‘우리 다음에 밥 한번 먹어요’에 ‘어유, 좋죠~’ 정도의 호응은 할 수 있게 됐다. INFJ가 먼저 식사 신청을 했다면, (오바 조금 보태서) 당신에게 모든 걸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