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방을 정리하다가 뜻밖의 종이를 발견했습니다.
성인이 되고 난 후는 늘 노크먼저, 사생활 존중 해준다고 방출입도 필요한 일 아니면 잘 안 했는데,
이제 방학도 끝나고 기숙사로 가고 나니 대청소를 해볼까 하고 방을 뒤지다 나온 종이입니다.
연애편지인가?
이런, 사격표적종이네요.(약간 실망^^)
오홋, 제법 맞추었네요. 누구나 다 하는 건데 아직도 뭐든 기특하기만 합니다.
이 종이를 보고 있자니 이 녀석 몇 년 전 지난 군대시절이 오버랩되어 지나갑니다.
'엄마, 통화가능하세요?'
어느 해지는 오후, 훈련소에서 아들이 전화가 왔습니다.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어 '무슨 일이 있구나',
느낌이 싸하고 와닿았습니다.
총을 처음으로 잡은 날이었나 봅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진짜 총을 이제는 실제로 들고 과녁을 쏘는 연습을 한 거죠.
어릴 때, 곤충 한 마리도 못 죽이던 여린 녀석이었으니 실제 총을 쏘는 것이 얼마나 긴장되었을까요.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 총을 쏘는 연습을 한다는 것이 계속 물음표가 생겼었나 봅니다.
결국 힘든 마음으로 상담을 신청했고, 친절한 조교인지 장교인지 모르겠으나 훈련병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답니다.
'엄마 아직 살아계신가?'
'네.'
'누나나 여동생 있나?'
'네.'
'그럼 이해하기가 더 쉽겠군. 사격 연습은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한 훈련이라고 생각해라. 누군가를 죽이는 연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적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려면 반드시 필요한 훈련이야.'
그 상담 이후로 아들은 힘든 마음도 많이 사라지고 훈련에 더 열심히 임했다고 얘기했습니다.
전화가 왔을 때는
'이 녀석 이렇게 관심병사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많았었거든요.
아들이 일병이 되었을 때쯤에 한번 전화가 또 왔습니다.
'엄마, 저 지금 야간 행군 중인데...'
'행군 중인데 왜 전화통화를 해, 군대 좋네.'
'아 그게 아니고, 행군해서 10등 안에 들면 휴가 준다고 해서 안 해도 되는데 일부러 하는 거예요.'
'그렇구나, 밤이 늦었는데, 동료들은?'
'모두 반환점 돌아갔고, 저 혼자 남았어요.
지금 반환점에서 너무 힘들어서 누워있어요.'
상황을 보니 앞에서 10등은커녕 뒤에서 1등인 거 같은데...
'저 너무 힘들어서 누워있는데 강원도 별들이 너무 예쁘네요.
엄마 보여주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아, 이 눔을 어쩌면 좋누. 그렇게 휴가는 물 건너가 버렸네요.
아들이 병장이 됐을 때 또 한 번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저 분대장 됐는데 이쯤 하면 군대 제 적성인가 봐요.
그냥 눌러앉을까요?'
병장정도 되니 이제야 군대가 익숙해지고 제대를 해버렸네요.
지나고 나서 보니 군대 있을 때 나라사랑 부모사랑 하는 마음 제일 컸었네요.
손에 쥔 영점표적지를 들고 물끄러미 내려봅니다. 이 종이를 제대하면서 왜 들고 나온 건지.
아들은 사격표적종이의 성적을 보며 자랑스러운 지난 군대시절을 떠올렸을까요?
아니면 그 시절 누군가를 죽이는 연습을 왜 하냐며 혼란스러워하던 자신의 여린 성정을 고민했을까요?
버릴까 하다가
.
.
'그래, 언젠가 왜 총을 쏘냐며 젊은 날의 너에게 했던 질문을 잊지 말아라' 싶어 책상서랍 속에 고이 넣어두고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