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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Sep 19. 2023

남편과의 안전거리

 

 태어나보니, 거기에 ‘내 가족’이 있었다. 선택할 수 없는 인간관계, 내가 처음으로 ‘사회적 관계’를 맺은 사람들, ‘가족’이다. 많은 사랑과 추억을 나누고 쌓으면서도, 또 대부분의 트라우마와 상처를 가족에게서 받는다. 십 대에는 학교에서 순수한 친구 관계를, 이십 대에는 어른이 되면서  성숙해져 만난 어른 친구들, 사회생활하며 직장에서 만난 동료들,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법적으로 맺어지는 시댁의 관계들까지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사회적 인간임을 매 순간 확인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서 나 다워지면서 많은 역할들을 배우고 사회화되어왔다. 동시에 이러한 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고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니 자연스럽게 부모가 되어가면서 나를 주장하던 관계에서 이제 무조건적으로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억울한 관계(^^)도 배운 것 같다.      


치열했던 청춘을 지나고 나니,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진정한 나 다움이라는 것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행복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안전한 인간관계의 거리 두기’는 어느 정도이어야 할까? 오십이 넘어서면서부터 관계로부터 편안해지기 위해서 관계의 정리가 중요함을 많이 실감한다. 선택한 관계 내에서 타인과의 안전거리 확보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교통사고가 없이 서로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나에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과는 행복한가?


편: 혼인하여 여자의 짝이 된 남자’와의 나만의 ‘거리 두기 기술’부터 이야기해보려 한다.     


요즘 유행하는 MBTI로 하면 남편은 ESTJ, 나는 INFJ 우리는 이렇게 다르다.


ESTJ: 조직적이고 절도 있으며 무게감 있는 선배(한마디로 꼰대), 교육자, 가부장적인 부모, 자기 관리 철저 엄격, 주위 사람들에게 냉정한 편, 대체로 남편을 정의하는 말들이다.


INFJ: 인내심이 많고 화합을 추구하는 유형, 확고한 신념(역시 고집 있다)과 열정으로 자신의 영감을 구현시켜 나가는 정신적 지도자형. 자기 안의 갈등이 많고 복잡. 풍부한 내적인 생활을 소유하고 있다.


이렇게 결이 다른 우리는 서로 각자의 분야(^^)에서 꼰대이며 가끔 아주 작은 일로 다투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며, 절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아웅다웅 살다 보니, 고비도 있었고, 잊지 못할 행복했던 순간도 많았다. 그러면서 내게 이런 남자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수가 된 ‘남편사용설명서’가 조금씩 그 페이지를 더해갔다.     

 



과학을 공부하는 남자와 인문학을 전공했던 여자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오랫동안 썸을 탔다. 매일 만나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며 데이트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IT 기술이 가져다준 문명의 발전으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외로움을 나누었고 일상을 나누었다. 연인이 서로 익숙해져 추억이 생기고 서로를 끌어당기던 다름이 매력인 줄만 알고 결혼을 했다. 이제 그 다름이 서로를 밀어내는 불편함이 되었다.


이십 대 어느 추운 겨울 처음 데이트할 때였던가. 온도계의 수은이 영하로 떨어졌지만 이제 갓 사랑을 시작한 청춘들에게 날씨가 무슨 대수였을까.


“오빠, 너무 춥다 ”

“어, 춥다고? 그럼 우리 뛰자. 그래야 열이 발생해서 따뜻해지거든.”


드라마에서 멋진 남자주인공들이 하듯이 이 틈에 손 한번 잡아주고 외투라도 잠시 벗어주길 기대했다. 아니 아니, 이 틈에 한번 안아라도 주지. 하지만 대단한 진리를 알려주는 양 수줍게 말하던 화학도는 그렇게 단순했다.


“오빠, 가을비가 내리네. 너무 좋아.”


강아지처럼 좋아서 어디 좋은 카페 나들이라도 기대했다.


“비는 원래 구름이 내린 거야. 구름은 작은 물방울인데 그 물방울들이 뭉치고 뭉쳐 커지거든. 그럼 무거워져서 공중에 떠있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져 비가 되는 거야. 요즘은 대기오염으로 절대 비 맞으면 안 돼, 탈모가 될 수도 있어.”


어김없이 과학 시간이 되었다.


투덜대면서도 나와는 다른 그의 이런 면이 좋아 결혼까지 결심했다. 하지만 결혼은 현실 아닌가, 이제 그 다름이 서로를 밀어내는 불편함이 되었다.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사소한 오해를 부르고 공감하지 못함을 낳게 되며 서운함을 불러와 남편은 그렇게 가끔 원수가 되어갔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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